“해고는 살인”이라고들 말한다. 일할 수 있고 그래서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는 얘기와 같다.
기업이 절체절명의 생존 위기에 빠지지 않는 한 같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 법에도 명시돼 있다.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서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해석이 얼마나 천차만별일 수 있는지 우리는 지난달 대법원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파기환송에서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든 일할 수 있으면 되는건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고 ‘질 나쁜’ 일자리는 줄어야 옳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겠다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온 관심이 쏠렸더랬다. 그런데 이 대책, 나오기도 전에 예상되는 내용을 놓고 논란이다.
불안한 고용 형태인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는데 초점을 둘 거라 예상했는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점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사용자측이 정부의 비호를 받아 비정규직을 더 오래 쓸 수 있게 되는 셈.
여기에다 비정규직 대책에 따른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규직에 대한 고용 유연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기획재정부에서 나와 논란은 더 커졌다.
고용노동부에서 이를 부정했더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또다시 기재부 의견에 쐐기를 박았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달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에 기업들이 인력을 뽑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업 부담을 상쇄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이처럼 일자리와 유연성에 대한 동상이몽이 최근 아주 확실해지고 있다.
단순화하자면 정부의 일자리에 대한 생각은 ‘그저 일할 수만 있는 자리’ 그리고 유연성이란 ‘해고에 대한 유연성’을 말한다. 그러나 감히 ‘상식’이라고 얘기하는, ‘정부가 아닌 쪽’에서 보자면 일자리는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 수준 이상으로 벌 수 있는 일’을, 유연성이란 해고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 전환에 대한 유연성을 강조한다.
사실 정부가 ‘시간 선택제 일자리’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을 때부터 이런 논란이 있었다.‘고용률 70%’라는 전무후무한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탄생한 시간 선택제 일자리는 전일제 근무가 아니라 하루 4~6시간 일을 하면서 일반 정규직 근로자와 복리후생, 임금 등의 근로 조건에 차이가 없는 일자리라고 했다.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취지는 좋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가능성도 불투명한데다 과연 이런 조건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임금이 보장되는 것인지, 정규직만큼 조직에 충성도를 갖고 일을 하려고 할 지, 나중에 승진이나 호봉 상승 등의 가능성도 보장이 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중장년층이나 경력단절로 고민하는 여성들의 일자리로는 괜찮을 수 있어도 당장의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청년들이 몰린다면 그것도 문제란 지적이 많았다.
일자리 나누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프랑스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 지난 2000년 도입한 ‘주 35시간 근무제’는 여전히 찬반 격론의 대상이다. 주 35시간만 일하고 연간 37일 유급휴가를 갈 수 있는 프랑스를 우리 대부분은 ‘일하는 사람들의 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26세의 여성 아흘렘 사이피를 소개했다. 사이피는 일이 두 가지다. 매일 새벽부터 점심 때까지 오를리 공항에서 탑승객 도우미로 주 44시간을 일한다. 그리고 오후엔 유통업체 까르푸에서 판매 매니저 일을 한다. 저녁 9시가 되어야 일이 끝난다. 한 직장에서 일해서는 생활비를 다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편법`을 취하는 것이다.
아파트를 임대해 살려고 해도 월세의 세 배 이상을 버는 지를 증명하지 않으면 집을 내주지 않는 상황이지만 기업들은 주 35시간 이하 일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일하고 많이 받는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처럼 이 제도는 저소득 블루칼라에게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받는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여전히 10%를 넘는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지금처럼 일을 할 수만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즉 고용 유지와 신규 채용에 대한 수요가 많은 상황에선 일자리 나누기가 더 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멀쩡한 일자리를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찢어 놓거나 혹은 정규직 해고를 더 쉽게 하는 식으로 고용률만 높이고자 하는 정책을 편다면 오히려 전체 노동 시장의 고용 불안만 부추겨 내수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
오히려 재계에서도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질적인 고용의 유연성, 즉 임금이나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와 정부의 ‘정규직 고용 유연성’ 카드가 단수 낮아보이게 한다.
이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프레임 대결 여론이 비등하는 가운데 간과되어선 안 될 것이 바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유연성이다. 특히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을 `기간` 제한에 둘 것이 아니라 `사용 사유`를 기준으로 하자는 끊임없는 노동계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시간을 미리 정해놓고 2년이 지난 경우 정규직이 된 것으로 본다는 법 조항이 있는 한 2년마다 기간제 노동자 해고나 ‘돌려막기’가 발생하는 상황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기간을 늘리는 것이 사용자나 근로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엄연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