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 온라인뉴스부 뉴스팀장
찌라시는 배포 방법에 따라 이름도 다르고 용도도 다양하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대부분의 전단지는 그냥 찌라시라 부른다. 아파트 우편함에 넣는 건 포스팅, 신문이나 서적에 끼워 넣는 건 부록, 비행기나 헬기를 이용해 공중에서 대량 살포하는 건 플라이어, 종이폭탄, 삐라다.
찌라시의 어원은 ‘지라스(散(ち)らす)’라는 일본어의 동사로 ‘흩뜨리다, 어지르다, 분산시키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로 건너와선 언제부터인가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을 모은 사설 정보지’를 의미하게 됐다. 마구 흩뿌려진 정보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찌라시의 효시는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모이던 신사들의 쑥덕공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식지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사교의 장이었다. 사교 모임에 참여한 신사들이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돈 되는 정보가 오갔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이 차(茶)를 마시며 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차를 거래하게 되면서 자연히 최초의 증권거래소도 탄생했다. 여기에 정통한 소식통에 의해 정보가 체계화하면서 소식지가 생겨났다.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찻집이 아닌 정보거래소였던 셈이다. 오늘날 국내에서 증권가 찌라시가 가진 파급력도 이때부터 쌓인 신뢰가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요 찌라시라는 것이 알고 보면 요물이다. 찌라시 전성기인 80년대에는 한밤중에 은밀하게 팩스를 통해 유통됐고 주가도 좌우할 정도였다고 한다. 연 구독료 2000만원짜리 문건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이 난다.
요즘에는 찌라시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무방비로 유포되며 특정인을 가해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는 물론 안면도 없는 유명 연예인에서 정치인, 경제인에 이르기까지 대상은 광범위하다. 호기심에, 혹은 재미 삼아 퍼나른 것이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그 찌라시가 활동 무대를 청와대까지 넓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현재 정치권을 발칵 뒤집은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진실공방에도 요 찌라시가 연루돼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문건에 대해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는 항간에 나온 비선 의혹의 핵심에 있는 정씨의 국정개입 관련 행적을 청와대가 자체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은 11월 28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에서 ‘찌라시’라는 비속어가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해당 문건에는 ‘문고리 권력 3인방’, ‘십상시’ 같은 자극적인 표현들이 담겼다고 한다. 정씨가 박근혜 대통령 핵심 측근 비서관 3명을 포함한 실무보좌그룹 10명을 지칭하는 이른바 십상시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운영 및 청와대 내부상황을 체크하고 의견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찌라시가 뉴스와 다른 점은 사실 검증 여부다. 찌라시란 실체를 증명할 수도 없고 증명할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마구 흩뿌려진 정보이기 때문이다.
본질은 청와대가 찌라시를 참고용으로 수집했다는 것이 아니다. ‘정윤회 문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2년도 안된 시점에 정권말기를 연상시키는 듯한 내용들이 시중에 나도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찌라시 커뮤니케이션은 사안의 본질을 떠나 자칫하면 맹목적인 비방전이나 스캔들로 비화되기 쉽다. 현재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전방위적인 전개 양상이 꼭 그렇다.
120년 전 실패한 갑오경장의 성공을 다짐하며 출발한 갑오년이 저무는 시점이다. 거문고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때 낡은 줄을 새줄로 바꿔 소리가 제대로 나게 하자던 연초의 다짐이 찌라시 파문에 얼룩지고 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