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 뉴욕특파원
그는 난독증에 시달리면서도 버진그룹을 창업하고, 영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으로 키웠다. 최근까지 순이익과 매출총이익의 개념을 몰랐다고 고백할 정도로 특이한 인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인물에 선정되고, 예수와 데이비드 베컴을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닮고 싶은 인물에 오르는 등 브랜슨 회장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손에 다 꼽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한때 화제를 모았던 ‘펀 경영(Fun Management)’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버진그룹의 최대주주로서 실질적인 소유주이지만 ‘오너’처럼 거만하게 굴지 않는다. 브랜슨 회장은 “직원이 행복하지 않다면 고객 역시 행복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직원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긴다.
브랜슨 회장이 주요 계열사인 버진애틀랜틱항공을 설립한 배경과 성장 스토리는 직원과 고객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철학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기업인으로서 당연히 그는 항공편을 자주 이용한다. 그는 30여년 전 어느 날 항공기 결함으로 공항에 발이 묶였고, 해당 항공사는 고객의 불만과 불편은 아랑곳없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브랜슨은 전세기를 빌려 떠나기로 했다. 그는 전세기에 같은 목적지의 관광객을 싼값에 태우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것이 버진애틀랜틱항공의 시초가 됐다.
이를 계기로 브랜슨은 버진애틀랜틱을 기존 항공사와 달리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브리티시항공 등 경쟁업체들의 견제와 방해로 사업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버진애틀랜틱은 그러나 이코노미석에서 좌석을 제외하고 비즈니스석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버진애틀랜틱이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게 남은 결정적 계기는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브랜슨 회장이 직접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만들었다.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짧은 빨간색 치마를 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고객들을 응대했다. 이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자연스럽게 광고 효과로 이어졌다. 브랜슨 회장은 이를 통해 사업 초기 직원들과 같이 어울리며 거리감을 없앨 수 있었다. 직원들의 동질감과 애사심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브랜슨 회장의 버진애틀랜틱 창업과 성장 스토리가 문득 떠오른 것은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리턴’ 사태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에서도 난리다. 블룸버그통신, 월스트리트저널, 폭스뉴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지난 이틀에 걸쳐 조 부사장 사태를 ‘땅콩 분노(Nut Rage)’라는 헤드라인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또 없다. CNN은 조 부사장의 행태를 ‘미친 이야기(crazy story)’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주요 방송의 보도마다 조 부사장의 사진과 함께 태극기가 선명한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의 이미지가 노출됐다. 대한항공의 위상을 깎아내린 것은 물론 ‘주식회사 한국’에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오너 경영인이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오류는 회사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다. 이는 직원 역시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조 부사장의 행태는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회사의 임원으로서 서비스가 틀렸다면 당연히 지적할 수 있다.
문제는 방식이다. 지적이 꾸지람을 넘어 직원에게 인격적인 모욕이 됐고, 조 부사장은 결국 자신의 인내심을 잃은 채 경거망동하고 말았다.
직원의 실수가 보였다면 솔선수범해서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었다. 부사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온화한 훈계와 함께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오히려 직원의 실수를 통해 자신이 모범적인 리더로 거듭날 수 있지 않았을까.
‘땅콩 리턴’ 사태는 자질이 부족한 재벌 2~3세들의 경영 세습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브랜슨이 엊그제 날린 트윗은 조 부사장은 물론 한국의 재벌 2~3세들이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이 트윗에 첨부한 사진에서 직원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먼저 직원들에게 다가가라. 그럼 그들은 열심히 일할 것이다(Tend to the people & they will tend to the bus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