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선수가 토스한 볼을 남자선수가 스파이크로 연결했다. 마치 아마추어 동호인 배구경기를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시즌 V리그 올스타전의 한 장면이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혼성 플레이지만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4075명의 관중은 어디에도 없는 진풍경에 열광했다. 장충체육관 리모델링으로 2년 넘게 경기가 없던 서울엔 모처럼 배구 열기로 화색이 돌았다.
역발상의 위력이다. 남녀 선수가 한날한시 같은 장소에서 올스타전을 치른 국내 프로 스포츠는 배구가 유일했다. 무엇보다 ‘남녀 혼성경기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파괴하며 뜻밖의 흥행을 낳았다.
역발상은 매너와 에티켓이 유난히 강조되는 골프 경기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골프대회로 알려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웨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630만 달러ㆍ약 68억2000만원)은 매년 50만명이 넘는 갤러리를 불러 모으며 흥행 대박을 이어가고 있다.
30일(한국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일의 TPC 골프장(파71ㆍ7216야드)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골프 해방구’라 불릴 만큼 자유분방한 응원문화가 특징이다. 통상적으로 골프장 갤러리는 큰 소리로 응원하거나 야유를 보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이 퍼팅 및 스트로크 시에는 걸음을 멈춰야 할 만큼 정숙이 강요된다.
하지만 피닉스오픈 대회장에서는 술을 마시거나 육성 응원을 해도 상관없다. 야유를 보내도 좋다. 골프장에만 있는 성가신 매너, 에티켓 따위는 잠시 잊어도 된다.
특히 3만명의 갤러리가 운집하는 16번홀(파3)은 마치 풋볼 경기장을 연상케 할 만큼 시끌벅적하다. 따라서 이 홀은 선수와 갤러리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선수는 3만 갤러리의 엄청난 야유ㆍ환호성과 싸워야 하지만 갤러리는 기존 골프장에는 없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최근 국내에도 역발상으로 주목받는 골프장이 있다. 3년째 스노골프를 진행 중인 경기 가평의 아난티클럽서울이다. 대다수의 중부 지역 골프장은 폭설 및 한파로 휴장하지만 이 골프장은 오히려 쌓인 눈을 이용해 스노골프라는 이색 상품을 만들었다.
스노골프는 북유럽과 캐나다에서 이미 오랜 전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겨울 스포츠다. 국내에는 아직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다. 장점도 많아서 골프와 트레킹을 동시에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요금도 저렴하다. 골프장 코스에 쌓인 눈이 결코 골칫거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 발상이다.
너도나도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근검절약에 긴축경영을 외치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정작 변화에 대해서는 한없이 인색하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 길들여진 탓일까. 역발상을 통한 혁신적 마케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특히 골프계 오랜 관행과 전통에 대한 도전은 마치 혁명처럼 여겨졌다. 골프장 500개 시대 대부분 골프장이 불황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