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은 모두 선수들 덕분이에요.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이 큰 힘이 됐죠.” 프로배구 정상에 오른 김세진(41ㆍOK저축은행)감독의 말이다.
김세진 감독은 OK저축은행의 사령탑을 맡은 지 2년 만에 우승팀 감독이 됐다. 그는 “우승은 말 그대로 기적이다”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이어 “뭘 가졌어야 겸손을 떨죠. 되는대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고 덧붙였다.
OK저축은행은 2015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스윕(3전 전승)을 달성하며 프로배구 최강자로 군림하던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아냈다. 삼성화재를 이끈 신치용(60) 감독과 김세진 감독의 인연은 특별했다. 그는 신치용 감독에 대해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배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학생 때지만, 성인이 될 무렵 진짜 배구를 시작해 선수생활이 끝날 때까지 25년을 신치용 감독과 함께 해왔습니다. 특별할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화재를 꺾은 후 신치용 감독을 보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떠오른 그 감정을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감사드리고, 죄송하고 그랬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김세진 감독은 “신치용 감독을 넘어 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며 “초등학생이 시험에 백 점을 맞고 아버지에게 자랑한 것 같았습니다”라고 당시 느낌을 회상했다.
김세진 감독은 지도자 경력 없이 해설위원을 거쳐 바로 감독을 맡았다. 새롭게 창단된 팀의 초보 감독이었다. 그는 “걱정만 한가득이었습니다. 이 자리가 내게 맞는 자리일까. 내가 이 옷을 입어야 하나 끝까지 고민했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해설위원을 했던 경험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감독은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김세진 감독은 “경력사원이라고 들어왔는데 선수와 감독은 천지차이였습니다. 신입사원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라고 처음 감독을 맡던 때를 생각했다. 그는 “경기를 보는 눈은 해설하면서 훈련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을 관리하고 전략을 짜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죠”라고 말을 이었다.
첫 감독에 한편으로는 가벼운 마음도 있을법했다. 그러나 김세진 감독은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경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처음인데 이정도면 잘했다고 스스로 만족한적 없습니다. 항상 더 잘하려고 노력했죠”라고 말했다.
신생팀을 이끌고 프로리그에 몸을 던져 승리를 따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어지는 연패에 선수단 전체가 침울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김세진 감독은 번지점프 등 독특한 방법으로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는 “연패의 늪에 빠졌다고 머리를 깎으면 스님들이 배구를 가장 잘하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뭘 그걸 가지고 아등바등하냐. 잘하는 것도 우리 실력이고, 그걸 꾸준히 유지하면 좋은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며 힘을 줬다고 했다.
경기장에서의 김세진 감독은 침착한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선수들에게 무작정 화를 내기보다 어떻게 하면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설명한다. 그는 “화를 낼 때도 있어요. 하지만 경기장에서 화낸다고 바뀔 일은 없습니다”라며 “연습하지 않은 것이 경기장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 훈련과정이 잘못된 것인데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화를 내면 오히려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선수들의 자존심을 자극한 적은 있어요”라고 고백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내 의도를 이해해주고 정말 잘해줬습니다”고 덧붙였다.
선수들은 김세진 감독의 ‘형님리더쉽’을 잘 따르고 이해해 함께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이번 시즌 OK저축은행의 중심엔 외국인 선수 로버트랜디 시몬이 있었다. 김세진 감독은 시몬에 대해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 선수들 사이에서 큰 형 같은 존재였어요. 외국인 선수라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더 잘 어울렸습니다”라고 칭찬했다. 그는 “외국인 선수 중에 시몬 만한 선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부상 치료에 전념하고 있지만, 다음 시즌까지 꼭 끌고 가고 싶습니다. 시몬이 있을 때 우리 선수들이 느낄 안정감은 다른 선수와 비교할 수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김세진 감독의 신뢰를 받는 선수는 시몬 뿐만이 아니다. 팀이 흔들릴 때 주장 강영준(28)이 중심을 잡아줬고, 주전 세터 이민규(23)가 안방 살림을 했다. 김세진 감독은 “선수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해내서 팀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시즌 파란을 일으키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다음 시즌을 바라보는 그의 자세는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겸손했다. 그는 “목표는 항상 우승이죠. 하지만 OK저축은행은 선수들이 젊어서 언제든 휘청거릴 수 있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착실히 준비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정규시즌을 보내고 챔피언 결정전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는 긴장이 풀리고 찾아온 감기에 고생 중이었다. 그러나 김세진 감독은 이미 우승을 지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선수들의 훈련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그는 “이제 한ㆍ일 V리그 탑매치도 있고 아직 시즌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며 “대한민국 프로배구 시즌이 끝났다고 대충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라고 힘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