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실제로 사고 직후인 작년 4월 17일자 보수와 진보의 대표격인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사설을 보면 이미 그 시점부터 세월호 침몰을 “사고”로 규명하는 시선과 “참사”로 호명하는 대비된 시선에서 출발했다. 이후 1년 여 세월이 흘렀으나 양 신문사의 대비된 시각은 한발자국도 흐트러지지 않았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그날의 조선일보 사설엔 “1993년 10월의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과 비교해볼 때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는 회상과 더불어 “세월호의 운항부터 구조(救助) 과정에 이르기까지 뭔가 말도 안 되는 실수와 과실들이 겹쳤을 것”이란 추론이 등장한다.
반면 한겨레는 “이번 참사는 불가항력의 재해가 아니다. (중략)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이나 생존자 증언 등에 비춰보면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낳은 전형적 인재”라 규정하고 “사고 발생 직후 초동 단계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응 방식은 총체적 부실 그 자체였다”고 비판했다. 이와 더불어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사설(社說)은 자연인으로서의 특정 개인이 입장을 표명하는 칼럼과 달리 신문사 자체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함은 물론이다. 침몰 사고 직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비탄에 빠졌던 우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란 반성과 더불어 유가족을 위한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 한국사회를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수 있도록’ 온 국민이 ‘국가 개조’에 힘을 모으자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반성의 시간도 잠시, 곧이어 “세월호 참사”와 “세월호 사고” 사이에서 예의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분열과 균열을 가져왔음 또한 사실이다.
4월 침몰 이후 사설 지면을 압도해온 세월호 이슈는 일단 주제부터 미묘하고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한국사회의 구조적 한계와 연결짓거나 유병언 및 세월호의 관련성에 주목했던 반면, 한겨레는 대형 재난에 속수무책이었던 청와대의 무능과 대통령의 대처능력 부재를 겨냥하는데 집중했다.
침몰 사고 직후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인 반응을 둘러싼 해석에서도 양 신문사간에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의 사과’가 그 시점에서 적절했는지를 다루면서 국민 마음을 얻기 위한 개각의 진정성 여부가 관건이라는 원론적 주장과 총리 사의로 인한 사고수습 공백을 우려하는 규범적 주장에 머물고 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공무원들만 질책하는 대통령’ ‘진심과 공감이 없는 대통령’ ‘유민 아빠의 절규를 외면하는 대통령’ ‘민심과 따로 노는 청와대’ ‘구멍가게만도 못했던 청와대의 세월호 대응’ 등의 사설을 통해 보다 직설적으로 대통령 및 청와대를 향해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이없는 구조 실패로 인해 야기된 대참사의 원인과 관련해서도 확연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승객 팽개친 선장과 선원”의 비정함, 부도덕성, 무책임성에 주목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대규모 인명피해에 집중, 그 일차적 책임을 해경에 물으면서 궁극적으로 정부와 대통령의 무능함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을 주제로 한 사설에서도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시각차이가 흥미롭게 드러났다. 전자는 세월호 유가족을 이용하여 사욕을 채우려는 불순세력의 개입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유민 아빠’에 대한 관심과 유족의 입장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고 있음이 눈에 뜨인다.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인 “세월호”를 지켜보자니 한국을 “특별한 성격의 위험사회”라 진단했던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ch Beck)이 떠오른다. 한국을 특별한 위험사회로 몰아가는 요인으론, 위험을 계기로 네 편 내 편 가르며 과도한 이념 논쟁으로 치닫거나, 위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소모적 갈등을 야기해온 한국사회 특유의 맥락이 지목되었음은 물론이다. 세월호 1주기 앞에서 통렬히 반성해야하는 우리네 아킬레스건이 무엇일지는 분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