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4월 15일 天人共怒(천인공노)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노한다

입력 2015-04-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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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지난 10일 서울대 수의과대에서는 ‘제13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기념식’이 열렸다.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회장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박사의 한국 사랑을 기렸다.

캐나다 출신 감리교 선교자이자 수의학자 세균학자였던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 만인 1917년 선교사 자격 획득 한국어 시험에 합격하고,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 그를 호랑이 스코필드라고 부르는 이유다. 성 ‘石’은 굳은 종교적 의지를 의미하고, ‘虎’는 호랑이, ‘弼’은 돕는다는 뜻으로, 한국인을 도우려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1919년 3·1운동을 지원했고, 만세시위를 하는 민중과 일제의 탄압상을 사진 촬영해 해외에 알렸다. 한 달여 뒤인 4월 15일 일제에 의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제암리(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학살사건이 자행되자 그 참혹한 광경을 사진에 담아 ‘수원(당시)에서의 일본군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미국으로 보내 여론화했다. 일본군은 증거를 없애려고 교회당에 불까지 질러 양민 28명을 학살하고 다시 인근 채암리(采岩里)에 가서 민가에 방화, 31호를 불태우고 39명을 학살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귀국한 뒤에도 한국을 계속 도왔고, 광복 후 서울대 수의대에서 일하기도 했다. 1970년 4월 12일 국립 중앙의료원에서 별세하자 정부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한국에 머무를 당시 강도를 가장한 암살기도사건을 겪기도 했던 그는 ‘3·1운동 제34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해 너무도 무심했다. 63년이 지난 1982년에야 문화공보부가 유물 발굴과 조사를 거쳐 그해 10월 21일 이 지역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했으니 이렇게 게으르고 굼뜬 나라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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