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호남 출신 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은 충남 보령… 김정태·한동우 회장은 부산이 고향
금융권 인맥을 금맥(金脈)이라고 말한다. 금융권 실세들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권과의 지연(地緣)은 금융계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실제 이명박 정권시절 금융권에서는 “출세하고 싶다면 경상도 사투리를 배워라”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금융권 수장들이 대부분 부산과 경남 출신들이라 잘 나가는 줄에 서고 싶다면 출신 지역을 속여야(?) 할 정도로 TK(대구·경북)·PK(부산·경남) 등 범영남권 출신 인사들이 즐비했다.
이처럼 과거 금융권에서 가장 부각된 지역은 이른바 PK(부산·경남)다. TK(대구·경북)가 합세한 범영남권 출신 인사들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현 정권 중반을 넘기면서 그간 소외됐던 호남·충청지역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출신지역과 무관하게 능력만으로 한자리를 꾀차는 인사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인맥이 바탕이 되기에 이 같은 지역구도 타파 움직임은 향후 금융권 인력구조 변화에 적잖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호남·충청 출신 ‘약진’ … 특정지역, 편중현상 해소 = 금융권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호남·충청지역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우선 금융권 수장 중에서 호남 출신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전남 보성), 윤종규 KB금융 회장(전남 나주), 박진회 씨티은행장(전남 강진), 권선주 기업은행장(전북 전주) 등 4명이다.
윤종규 회장의 경우 4대 금융지주 수장 가운데 첫 ‘호남 출신’으로 금융권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 정권에 특별한 인맥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앞서 KB금융지주 회장 인선 과정에서 막판 뒷심을 발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무엇보다 지난해 발생한 KB사태가 관치 금융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인 만큼, 변화의 바람의 중심에 섰다.
임종룡 위원장은 앞서 인사청문회에서 32년간의 공직기간 중 금융정책 부문에서 전문성을 쌓아 왔다는 점, 현 정부에서는 드문 호남 출신 공직자라는 점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박진회 씨티은행장 역시 전남 강진 출신이다. 박 행장은 지난해 11월 하영구 전 행장이 물러나면서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선임됐다.
충청지역의 경우 조용병 신한은행장(대전), 이광구 우리은행장(충남 천안), 박종복 한국SC은행장(충북 청주) 등이 대표적인 이 지역 출신 인사들이다. 최근 취임한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충남 보령 출신이다. 김 회장은 서울고와 성균관대를 나와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 증권정책과장·재정경제부 복지생활과장, 금융감독위원회 공보관,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금감원 수석부원장, 수출입은행장 등을 역임했다.
조용병 행장은 대전 출신으로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는 등 전통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인물이다. 천안 출신인 이광구 행장은 충청권 인사답게 온화한 성품으로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 진웅섭 금감원장과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 김병호 하나은행장,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겸 광주은행장은 서울 출신이다.
◇범영남권, 금융권 권력 여전 = 호남·충청권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무색할 정도로 금융권에는 범영남권 인사들이 아직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부산)을 비롯해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부산), 김한조 외환은행장(경북 안동), 김주하 NH농협은행장(경북 예천), 김재천 주택금융공사 사장(대구), 이주형 전 수협은행장(경북 안동), 성세환 BS금융지주 회장 겸 부산은행장(경북 청도),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경북 경산) 등이 그들이다.
눈에 띄는 점은 금융권에 TK(대구·경북) 권력이 부상하면서 그동안 실세로 통하던 PK(부산·경남)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양상이다. 과거 금융권에서는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대구)과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경북 경주),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경북 영천),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경북 상주), 안택수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경북 예천) 등이 대표적인 TK 인맥으로 통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 가장 부각되는 지역은 PK(부산·경남)였다. 금융권에 PK 권력 부상은 과거 신동규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선임되면서 부터다. 신 전 회장은 전 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PK출신이라는 점에서 보은인사와 낙하산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농협중앙회 노조와 타협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농협금융을 비롯해 KB·우리·산업·신한·하나금융 등 국내 6대 금융권 수장들이 모두 PK 출신들로 채워졌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경남 합천)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경남 진해),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경남 진해),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부산),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부산) 등은 모두 PK 출신이다.
당시 이들을 묶는 연결고리는 지연에만 연연하지 않았다. 강만수 회장(1965년 졸업)과 신동규 회장(1969년 졸업), 김정태 회장(1971년 졸업)은 경남고 선후배 사이다. 또 강 회장과 신 회장은 경제관료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