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20대 딸은 아빠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여행에 나서고, 어렸을 때 하지 못한 놀이시설에서 바이킹을 타고, 운전 연수를 한 뒤 식당에 들른다. 또한, 유학 중 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온 딸아이와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다. 행복한 부녀의 추억 만들기와 일상이 TV 화면을 가득 채운다. SBS 관찰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의 24일 방송이다.
하루 뒤인 25일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에서 20대~30대 세 자매(29세, 31세, 33세)가 “사는 게 힘들다”며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세 자매가 실직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다. 수많은 청년이 실업으로 고통받고 중장년은 실직으로 길거리에 쫓기며 극단의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부천 세 자매처럼.
하지만 TV 화면에는 그런 모습은 아예 없다. 특히 사실적인 일상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관찰예능에선 더욱 그렇다. 아버지들이 제주 여행을 떠나 아이들과 낚시를 하고 아이들을 위해 동화책을 만들어주고(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소방서 등 체험학습과 시골을 방문해 시골생활을 해보고(SBS ‘오 마이 베이비’) 할아버지들이 그리스 명소를 돌아보며 감회에 젖고(tvN ‘꽃보다 할배’) 그리고 혼자 사는 미혼남은 일본 대마도에서 낚시하며 손맛을 만끽하는(MBC ‘나 혼자 산다’) 등 관찰예능에선 또 다른 대한민국이 펼쳐지고 있다.
육아 관찰 예능에는 맞벌이 부부들이 발 동동 구르며 어린이집을 찾아 나서고 층간소음 때문에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뛰어노는 것조차 말리며 노심초사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20대 부녀가 나오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관찰 예능에는 20대 청년 실업의 절망과 이른바 ‘삼포세대’의 좌절 그리고 중장년층의 실직 공포의 그림자도 전혀 찾을 수 없다.
리얼리티쇼의 대표적인 관찰 예능에는 현실은 존재한다. 단지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는 꿈같은 육아와 가족의 모습 그리고 현실이 거세된 판타지만 횡행할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관찰 예능은 우리 인식을 디자인하는 무서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문제가 있다. 사실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되는 관찰 예능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을 사실화하고 일반화시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관찰 예능은 현실을 재구성하거나 재현에 불과하다. 그런데 관찰 예능 속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시청자는 현실로 인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찰 예능은 삶의 직접적인 경험, 정서 그리고 관계를 망각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현실의 척도로 삼게 한다.
기 드보르가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지적하듯 미디어 속 모습이 현실 속의 세상을 압도하고 미디어가 구축한 재구성물이 현실 속 세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과 판타지로 무장한 요즘 TV 관찰 예능은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 공감 대신 좌절과 절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이제 관찰 예능 제작자는 한 번쯤 프로그램의 폐해를 생각해보고 현실을 담보한 그래서 시청자들이 공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청자 역시 관찰 예능 프로그램 속에 펼쳐진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진정성으로 삶을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