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지방자치 출범 20년을 맞았지만, 지방자치의 한 축인 전국 지방의회 의원들의 불법과 탈법 등 일탈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방의원들의 이 같은 도덕적 해이 현상이 최근에는 도를 넘는 '갑질' 행위로까지 이어지면서 의회 내 윤리위원회 처벌 강화 등 특별한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의원들의 일탈 행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의원들이 의회의 승인·심의권을 빌미로 건설 업체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이권에 개입하는가 하면 여성직원을 성희롱하고 직원들을 머슴 부리는 듯 하는 '슈퍼 갑질'도 서슴지 않고 있다.'
◇ "감정가 높여줄테니 돈 내놔"…도 넘은 공사업체와의 유착
전북 전주시의회 김현덕(58) 의원은 "토지 감정가를 높여주겠다"며 로비자금 3천여만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달 28일 전주지법으로부터 벌금 1천만원, 추징금 3천56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지난 2012년 한 유통회사 대표를 만나 "국가식품클러스터 부지로 편입된 30억원 상당의 전북 익산시 왕궁면 땅(2만8천㎡)의 감정가를 40억원 이상으로 높여주겠다"며 7차례에 걸쳐 모두 3천65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토지감정가가 40억원 이상으로 나오면 2억원의 대가를 약속받고 사업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직원에게 로비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지난달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심현보(63·새누리당) 경남 진주시의회 의장은 공무원을 협박해 각종 공사 수십 건을 수주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경찰에 구속됐다. 심 의장은 2011년 3월 진주 모지역 면장과 공무원에게 압력을 넣어 하수도 정비공사(도급액 1천700만원)를 수주하는 등 2013년 12월까지 총 52건 82억4천200만원 상당의 관급·사급공사를 수주한 혐의를 받았다. 심 의장은 현재 이 사건과 관련,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또 부산시의회 소속이던 박인대(58) 전 의원은 부산시 동부산관광단지 내 푸드타운 시행사의 실제 운영자인 송모(49)씨로부터 사업 추진 편의제공 명목으로 6천1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 새벽에 '컵라면 달라'에서 간부 공무원 구타까지…'꼴불견 갑질'에 직원들 한숨
전북도의회 정진세(37) 의원은 의회 내 여직원을 지난해 8월부터 상습적으로 괴롭히고 해당 여직원의 계약직 연봉책정기준표를 몰래 얻어내 공개하는 등 '슈퍼 갑질'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지시에 대응이 늦은 다른 직원들에게는 "뺑뺑이를 돌려봐야 정신나겠느냐. 맛 좀 봐야 정신차리겠느냐"는 등의 감정 섞인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3월 진행된 전북도의회의 유럽 해외연수에서는 새벽 1시께 카톡 문자로 여직원에게 "컵라면을 가져다 달라"고 요구했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수개월간 괴롭힌 이 여직원의 좌석을 발로 차거나 잡아당기는 등의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정 의원은 사건이 불거지자 일부 사안에 대해 공식 사과했으며, 현재 소속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대구 달서구의회 허시영(42) 의원은 작년 10월 자신보다 15살 많은 간부 공무원의 정강이를 걷어찬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윤리특위에서 '출석정지 25일'의 징계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9월 타 시·도의회 비교견학 차 전남 무안군에 갔다가 의전 소홀 등을 이유로 같은 의회 전문위원(57)의 정강이를 1차례 걷어찬 것으로 밝혀졌다. 허의 원의 행위는 일행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졌으며, 당시 A씨 왼쪽 정강이에는 어른 손바닥만한 멍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구경북본부 달서구지부는 성명서를 내고 허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었다.
광주시 북구의회에서도 지난 3월 2명의 의원이 집행부 공무원에게 이른바 '갑질 행세'를 했다가 사과의 뜻을 밝히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의원은 교부금 집행과 관련해 담당부서 공무원(6급)과 의견이 충돌하자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가했고, 또 다른 의원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부당지급분 환수와 관련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가 노조의 반발로 사과 입장을 밝히는 등 체면을 구겼다.
광주 광산구의회의 한 의원은 최근 2년간 구 산하 복지관 보조금 집행내역 전체를 요구해 공무원들의 반발을 샀다. "10일 이내로 제출해 달라"는 이 의원의 요구에 직원 50여명이 야근까지 하며 7만장에 이르는 관련 서류를 복사해 줬는가 하면 퇴근 이후에도 수시로 해당 의원의 전화를 받는 등 직원들이 큰 고충을 겪었다. 급기야는 해당 공무원들이 의원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술 마시면 다 그러나요?"…음주 추태도 '각양각색'
새누리당 소속인 윤범로 충북 충주시의회 의장은 지난해 8월 초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저녁식사 때 여성 공무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모욕)로 불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 의장은 "시에서 채용한 사진 담당자가 왜 여성인지 모르겠다", "평상시 복장 상태가 불량해 보인다. 통 넓은 바지를 입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충북지역 사회단체로부터 사퇴압박을 받기도 했다.
같은 새누리당 소속인 박한범 충북도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3월 저녁 충북 옥천읍의 한 음식점에서 승진 인사에서 누락된 공무원 A씨에게 "왜 나에게 (인사를) 부탁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다가 벽에 맥주병을 던지는 추태를 부렸다.
또 부산 영도구의회 김모(43) 의원은 지난해 11월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의 한 식당에서 남구 유엔평화로까지 8.2㎞가량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4차례 거부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인천 부평구의회 한 의원은 지난 2월 새벽 부평구 산곡동의 한 골목길에서 "택시요금 카드결제가 왜 늦느냐"며 택시기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술에 취한 이 의원은 카드결제가 늦어지자 자신의 명함을 내보이면서 "내가 부평구의원"이라고 주장하며 행패를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 "'사후약방문'보다는 사전 자정노력·교육강화 중요"
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김남규 정책위원장은 "도의원과 시·군의원들의 일탈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윤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의회내 자정 노력과 인권교육 등의 프로그램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의회가 윤리위원회을 쉽게 열지 못하는 것은 해당 의원의 무죄 판결에 따른 역소송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이것이 무섭다고 당장 벌어진 문제의 처리를 뒤로 미룰 순 없으며 '사후약방문'보다는 재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사전 노력들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오창근 사회문화국장은 "의원 개개인의 작은 일탈이 지방의회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라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고 당 차원의 징계, 의회 차원의 공론화도 필요하다"며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처벌이 이뤄진다면 마땅한 개선책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