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수정(36)이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오는 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은밀한 유혹’(제작 영화사 비단길, 배급 CJ엔터테인먼트, 감독 윤재구)이 그녀의 신작이다. 3년 전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절정에 달했던 임수정의 매력은 ‘은밀한 유혹’에서 좀 더 농익은 모습이다.
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수정은 언제나처럼 동안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관록과 여유를 느끼게 했다.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시작된 그녀의 전성시대는 어느덧 수많은 필모그래피와 함께 10년의 세월을 지났다.
그래서였을까. 임수정은 호불호가 엇갈린 평가, 흥행 부담감에 대해 동요하기보다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온 영화를 보면 (흥행 성적이) 아쉬운 영화도 있었고, 관객이 사랑하는 영화도 있었다. 사실 출연하는 작품이 다 잘 되면 좋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작품은 없다. 그건 모든 배우의 바람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마음의 동요 없이 평가를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겼다. 배우로서 ‘다음에 더 잘해야지’ ‘더 좋은 작품으로 빨리 인사해야지’라는 생각뿐이다.”
‘은밀한 유혹’은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사채까지 떠안게 되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여자 지연(임수정)이 성열(유연석)의 위험한 거래를 수락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범죄 멜로물이다. 임수정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꿈꾸는 지연의 갈등과 욕망, 사랑을 연기한다. 순수함부터 치명적인 매력까지 모두 그린 임수정은 수영, 왈츠, 광동어까지 소화했다.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비키니 등 여러 가지 후보군이 있었는데 고전적 의상을 선택했다. 극 중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가장 잘 어울린다는 모두의 의견이 있었다. 한국어와 영어, 광동어까지 소화했는데 광동어는 북경어와 다르다. 지역어는 성조가 더 세다. 억양도 그렇고 익히는데 쉽지 않았다.”
이 작품은 1954년 프랑스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전 세계 26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지푸라기 여자’를 원작으로 재해석했다. ‘지푸라기 여자’는 클래식과 서스펜스가 조화를 이룬 탄탄한 구성과 최고의 반전이 있는 완전 범죄 소설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원작과 결말이 다르다. 원작은 여주인공이 결국 감옥에 가서 자살하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여주인공에게 다소 수용적으로 표현된 결말이 2015년 버전으로 각색되면서 지금 시대의 여성상이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게 맞는 거 같다.”
지연의 캐릭터를 완성하는데 상대역 성열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지연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고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는가 하면 사랑의 감정도 느끼게 한다. 유연석은 임수정의 상대역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촬영 당시 유연석은 공교롭게 ‘상의원’ ‘제보자’ 등 세 작품을 동시에 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 와서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준비된 연기도 있었지만 미리 동선도 맞춰보는 등 몇몇 장면은 같이 만들어갔다. 호흡이 정말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유연석이) 열려 있었다. 제가 나이도 더 많고 선배지만 감정을 세게 던지면 다음 신에서 더 세게 돌려줬다. 리액션이 되는 배우라서 고마웠다. 저도 많이 의지했다.”
요트라는 공간은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극대화하는데 유효했다. 지연을 사이에 둔 회장(이경영)과 성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욕망을 이루기 위해 치밀하게 진행되는 은밀한 계획은 밀폐된 공간에서 더 큰 긴장감을 유발했다.
“요트는 세트였지만 미술팀이 공들여서 제작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물과 사건, 상황이 보여지다보니 배우끼리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이경영 선배가 저에게 음식이 담긴 접시를 던지는 신이 있는데 허벅지에 맞아서 피멍이 드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오케이 사인 후 이경영 선배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괜찮냐?’며 달려오더라.(웃음)”
신데렐라를 꿈꾸는 지연의 모습은 모든 여성 관객의 공감을 자아낼 예정이다. 단순히 금전적 욕구를 넘어 신분상승이 가능한 은밀한 제안이기에 더욱 그렇다. 임수정의 경우는 어떨까.
“모든 것에 욕심내는 것은 아니다. 진짜 갖고 싶어도 타협할 때가 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대리만족한다. 실제로 경험한 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 행복하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게 가장 저 다운 모습이다.”
3년의 공백기는 임수정을 기다리는 관객에게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오랜 기간 쉰 것 같지만 그녀는 언제나 촬영 현장에 있었다.
“작년에 영화 2편을 촬영했다. 그 작품이 지금 개봉하게 됐다. 하반기에도 하나 개봉한다. ‘은밀한 유혹’은 2013년 여름에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출연을 결정했다. 제작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실질적으로 1년 6개월 휴식하면서 작품을 선택했다. 이제는 못해도 1년에 한 작품은 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촬영현장에 있었는데 정말 행복했다. 그동안 연기적인 무게감에 짓눌려 있었다면 이젠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 즐겁다.”
“‘장화, 홍련’은 배우로 저를 탄생시킨 작품”이라고 말한 임수정의 동안 미모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최근 SBS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피부 관리실”을 언급하기도 한 임수정은 지나치게 솔직했다.
“동안이라고 해주면 그냥 감사하다. 30대 중반을 살짝 넘은 여배우인데 곧 40대가 될 거고 50대가 된다. ‘나중에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생각을 했는데 나이에 맞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다행히 하얗게 태어난 편이다. 운동도 하고 먹는 거도 조절하면서 저도 꾸준히 관리한다. 어쩔 수 없다.”
동안 미모의 소유자지만 이제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에 “축하한다”고 말한 임수정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금은 작품에 치중해서 배우로 뭔가 더 활동하고 싶다”며 “지금이 싱글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시기다. (결혼은) 천천히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밀한 유혹’ 엔딩 부분에 공개되는 지연의 의미심장한 미소는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수많은 해석을 낳으며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이에 임수정은 “지연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요트에 들어서는 순간 온갖 상황에 휩쓸린다. 그래도 후반 부분 몰아닥친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뚫고 넘어가려 애쓴다”며 “순수하게 모든 상황을 잘 모르고 끌려갔던 여자일까.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숨겨두고 있었을까”라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