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영화 열정… 손대는 작품마다 초특급 흥행
올봄 전 세계 극장가는 액션·판타지 대작 ‘어벤져스2’ 열풍으로 뜨거웠다. 아이는 물론 나이를 잊은 어른들도 영화 속 영웅 캐릭터에 푹 빠졌고, 직장 내에서도 한동안 단골 주제는 ‘어벤져스2’였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만화 속 캐릭터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인물, 바로 마블스튜디오의 최고경영자(CEO) 케빈 파이기다. 올해 42세의 파이기 CEO는 진취적인 사고방식과 대담함으로 마블 역사에 길이 남을 큰 획을 긋고 있다.
◇남달랐던 영화 열정…거장들이 거친 대학 택한 ‘괴짜’
197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파이기는 어릴 때부터 마블의 만화를 보면서 자랐다. 파이기는 이미 10대에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영화는 나의 판타지이자 나의 탈출구”라고 말할 정도였다. 미래를 미리 경험한다는 소재로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백 투더 퓨처’는 파이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파이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마블 코믹북 속 영웅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 같은 관심은 영화 제작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이기의 할아버지는 미국 최장수 드라마 ‘가이딩 라이트’ ‘애즈 더 월드 턴즈’를 제작한 인물이다.
영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파이기의 진로도 결정했다. 파이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영화학과를 다녔다. 파이기는 졸업 축사를 통해 자신이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영화감독의 거장인) 조지 루카스, 조지 하워드, 로버트 저메키스가 모두 다녔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이기는 다른 학과를 택하라는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를 다섯 차례에 걸쳐 모두 거절했는데, 그 이유가 거장들이 다녔던 곳이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파이기는 재난 영화 ‘볼케이노(1997년)’ ‘유브 갓 메일(1998년)’ 제작에 참여하면서 마침내 영화판에 입문했다.
어린 나이에 현장에 뛰어든 파이기는 훗날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학생들에게 “‘거절’은 평범하게 발생하는 일”이라며 “이 같은 것을 일찍 배운다면 인내심과 저항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파이기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것이다.
◇만화 원작에 대한 애착·팬심을 아는 ‘쇼맨십’ 제작자
파이기가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0년. 울버린 신드롬으로 히어로 영화의 돌풍을 예고한 ‘엑스맨1’ ‘엑스맨2’를 제작했던 로렌 슐러 도너의 비서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엑스맨 캐릭터는 마블이 탄생시킨 캐릭터이지만 20세기폭스가 1994년 판권을 사들였다. 파이기는 이후 마블의 전성기를 열었던 아비 아라드 전 마블 회장 겸 CEO의 눈에 띄어 아라드와 일을 하게 된다. 마블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7년, 미래가 촉망됐던 대학생 파이기는 마블 스튜디오의 CEO 자리에 앉았다.
파이기는 CEO가 된 후 영화 한 편을 준비하면서 과감한 캐스팅을 시도했다. 바로 2008년 개봉했던 ‘아이언맨1’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주인공으로 뽑은 것.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때까지만 해도 액션·판타지 장르보다 드라마나 로맨스로 필모그래피를 쌓았던 배우였다. 여기에 미국 드라마 ‘뱀파이어 해결사’ ‘엔젤’ 등 방송가에서 활약하고 있던 시나리오 작가 조스 웨던도 영입했다. 아이언맨은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쓸었고, 이 연장선으로 만든 영웅군단 영화 ‘어벤져스1’ 역시 전 세계적으로 16억 달러(약 1조8000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당시 어벤져스의 흥행 성적은 ‘아바타’ ‘타이타닉’에 이은 역대 박스오피스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었다.
전문가들은 마블이 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파이기의 ‘쇼맨십’을 꼽았다. 파이기는 일찌감치 영화 팬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어벤져스의 레드카펫 행사를 할리우드의 유서 깊은 극장인 엘카피탄으로 정한 것도 이 같은 철학이 반영된 것. 당시 경쟁사인 DC엔터테인먼트와 워너브라더스가 영화 팬보다 평론가들에게 영화를 먼저 공개한 것과는 전혀 상반된 마케팅 전략을 펼쳐 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파이기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앞에는 서지 않는다. 그는 “내가 제작자여서 좋은 점은 내 시간의 99%를 무대 뒤에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수줍움이 많은 성격이라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만화 원작을 충실히 영상 속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파이기의 스타일도 마블의 전성기를 이끈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 파이기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엑스맨’ 제작에 참여했을 당시 한 임원이 캐릭터와 장면을 더 발전시킬 수 없냐고 고함을 쳤던 기억이 난다”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만화책을 읽고 있었고, 속으로 ‘만화책에 있는 장면 그대로만 만든다면 엄청날 것”이라고 되뇌곤 했다”고 회상했다.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원칙주의가 곧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어진 것이다. 웨던은 2011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이기는 나의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들어 줬다”고 했다.
최근 파이기는 공개석상에서 “마블은 어두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영화와 마블을 아끼는 파이기의 열정에 마블의 앞날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