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전 가천대 객원교수
애정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에 감복해 마침내 조각상을 갈라테이아란 미모의 여인으로 바꿔 놓았다. 이 신화를 무슨 억하심정인지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뒤집어 놨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피그말리온 콤플렉스로 급전직하한다.
갈라테이아가 자신의 주인 피그말리온에게 반발한다. 희곡 속 여인은 물론 조각 같은 것과는 관계없는 시골 출신의 미인 아가씨다. 피그말리온도 지체 높고 부유한 상류사회 인사다. 그는 아가씨가 뭐든 무조건 자신에게 복속하는 걸 당연지사로 여긴다.
우리네 속담에 장마당에 나온 촌닭 같다는 말이 있다. 무명치마가 화려한 비단 옷으로 바뀌고, 감자나 캐 먹다가 매일 포도주에 스테이크를 먹자니 시골 아가씨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에 그녀는 드디어 반기를 든다. “나는 시골로 돌아간다, 내 맘대로 먹고 또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는 나만의 생활이 좋다”. 피그말리온 역 배우는 망연자실하지만 되돌릴 길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에게 배신의 정치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질책한 건 피그말리온 희곡 내용과는 엇박자다. 또 유 의원이 시골 아가씨와는 달리 자신의 피그말리온인 대통령에게 내치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하는 모습도 가령 버나드 쇼의 눈으로 본다면 기이할 터다. “이것들 봐요! 둘 다 그렇게 하면 내 소설이 엉망이 되지 않소?”
그러하다. 피그말리온 콤플렉스를 신화 내용의 이면에서 꿰뚫어본 그가 오늘의 우스꽝스러운 한국정치 풍경화에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 것 같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건 예상됐던 일이라 놀랍지 않았다. 행정부의 시행령에까지 국회가 족쇄를 채우려 한 건 위헌임을 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그럼 그저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하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지 왜 소리소리 질러 야당 의원들과 함께 자신의 갈라테이아 유승민 원내대표까지 공개적으로 찍어 혼(?)을 내는가? 아무리 봐도 대통령이 그 품위를 잃은 모양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배신인가? 더 직설적으로 말해 친박에서 비박으로 전환하면 그게 대역죄(?)라도 되는 건가?
서청원 의원 등 친박들의 얼굴 바꾸기도 기묘하다. 유승민 대표가 공무원연금 협상 타결이라는 목표 아래 야당 측 국회법 개정안을 받자고 했을 적엔 동의했다가 대통령의 호통소리에 놀라 그를 역적(?)으로 몬다면 조선왕조의 암군 선조 치하 시절이나 다를 게 뭔가? 말 그대로 한심하다.
대통령에게 묻는다.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게 작전이란 주장이 있다. 가뜩이나 여론 지지도가 죽을 쑤던 터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처 실패로 당장 ‘레임 덕’이라도 될까 봐 ‘오버 액션’을 하는 것이라면 계산 착오다.
국민이 그걸 모를 것 같은가? 여당과 협조해 조용히 위헌 법률을 폐기하는 쪽으로 가느니만 못했다. 대통령이 무슨 여왕인 양 행세해선 안 될 일이다. 김무성 대표의 ‘연체동물’ 역할도 이젠 한계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