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정부가 3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숨가쁜 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제 채권단과 강도높은 긴축안에 합의한 뒤 당 안팍은 물론 여론으로부터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권은 풍전등화 신세다.
그리스는 15일(현지시간)까지 연금과 부가가치세, 노동관계, 민영화 등 4대 부문에서 합의된 개혁안에 대한 입법 절차를 끝마쳐야 한다. 그리스 의회는 이날 3차 구제금융 합의안을 표결 처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집권당 내의 강경파와 연립정부 파트너인 독립그리스인당 등 내부 반발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구제금융 합의안이 여당인 급진좌파연합(SYRIZA, 시리자)이 내세운 정책과 모두 상반된 내용으로 혹독한 긴축과 자유시장 경제의 개혁을 그리스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어서 치프라스 총리는 강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도 불사하고 있는 유럽 정상들의 압력에 돌연 방침을 전환, 지난 5일 국민투표로 그리스의 유권자가 반대한 조치보다 더 까다로운 내용의 재정 긴축에 합의했다. 이번 구제금융 지원 계획에서는, 그리스에 연금 삭감 및 부가가치세 증세, 500억 유로의 국유자산 매각, 그리고 국제 감사관에 대부분의 입법 행위에 대한 거부권을 주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파의 핵심 인사인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에너지 장관은 “이른바 파트너들, 특히 독일 정부는 우리나라가 식민지인 것처럼 행동하고, 우리가 흉폭한 협박자이자 경제의 파괴자인 것처럼 다룬다”고 항의했다. 그는 내용은 밝히지 않으면서도 “그리스에는 합의에 대한 대안이 당시에도 있었고 현재도 갖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다른 시리자 관계자는 “합의에 분개하는 여당 의원들에게도 찬성하도록 호소하고 있다”면서도 “어려운 지원 조건에 대해 당을 분열시켜 현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채권단의 노림수”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시리자의 연정 파트너인 독립그리스인당의 대표 파노스 카메노스 국방장관은 “(협상안은)헌법적 가치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정치권 외부의 반발도 거세다. 그리스 양대 노총인 공공노조연맹은 이날 협상안에 반대하는 파업을 선언했다. 치프라스 총리 취임 이후 첫 파업이다.
의회가 이날까지 개혁안을 입법화하지 않으면 유럽으로부터의 구제금융 지원을 책정하는 정식 회담은 소용이 없게 된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경제 정책에 대한 시리자의 반발로 그리스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며 그 신뢰를 회복하려면 먼저 재정 조치를 입법화 하도록 요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표결에서 시리자 소속 의원 중 각료 2명과 의회 의장을 포함해 최대 30명이 채권단과의 합의에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시리자와 독립그리스인당으로 구성된 치프라스 연정은 의회(정수 300석)에서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제1야당인 신민당 등 주요 야당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집권당 내 이탈표가 생기더라도 일단 의회에서 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제는 이미 시리자 내부에 균열이 일면서 치프라스의 국정 운영에 차질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총리는 야당과 대연정을 맺거나 조기 총선에 나서지 않는 한 정권 유지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의회 표결에서 여당 의원을 장악하지 못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바나 다름 없다는 평가다.
치프라스 총리는 유로존 지도자들과의 3차 구제금융협상 합의안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꺼이 이행할 것이란 입장이다. 협상을 마치고 귀국한 치프라스 총리는 유로존이 구제금융 대가로 제시한 새 경제개혁조치가 가혹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강조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또 협상 결과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총리직을 사임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WSJ는 치프라스 총리가 정치생명을 유지할 경우, 의회 표결 후 개각이 있을 것이라며 합의안에 대한 반대파는 경질시키고 채권단과의 합의 이행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을 기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 반발자들의 당적을 박탈하는 한편 시리자의 규정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시키거나 무소속 의원으로 돌릴 것으로 예상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14일 인터뷰에서 시리자의 단합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