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이 ‘스타’에서 ‘배우’로 진화하고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흥행을 일구었지만, 그녀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언제나 ‘긴 생머리의 청순 섹시 스타’였다. 그래서 전지현은 더 열심히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블러드’ ‘베를린’ ‘도둑들’ 등 흥행 여부를 떠나 꾸준히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에는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14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22일 개봉한 영화 ‘암살’(제작 케이퍼필름, 배급 쇼박스)은 그런 전지현에게 여배우의 입지를 굳힐 기회의 장이다. ‘타짜’ ‘도둑들’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거듭난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이정재ㆍ하정우ㆍ조진웅ㆍ오달수 등 충무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암살’의 개봉 하루 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만난 전지현은 시나리오에 만족감을 표시하며 최동훈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시나리오가 완벽했다. 최동훈 감독은 정말 천재다. 감독의 전작을 볼 때 오락성이 짙고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다.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 속에 그런 모습이 살아있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감독의 색깔을 잘 입는 배우다. (최동훈 감독이) 저를 100%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연기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전지현은 ‘암살’에서 한국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 역으로 변신했다. 질끈 잘라 묶은 머리부터 안경까지 전지현은 완벽하게 안옥윤이 되었다.
“독립군 최고의 저격수 역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명중할 수 없다는 극 중 설정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안옥윤이 가진 감정이 여러 면이었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암살’의 80% 분량을 안옥윤이 차지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전부 다 하면 숨 막힐 것 같았다.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캐릭터를 좁혀 나갔다.”
그런 전지현에게 1인 2역은 또 다른 과제였다.
“안옥윤과 미츠코를 다르게 연기하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1인 2역은 쉽지 않았다. 헷갈릴 때도 있었다. 현장에서 농담으로 ‘옥츠코’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지현은 ‘암살’의 출연 소감을 밝히며 “정말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욕심낼 만한 캐릭터였고, 욕심을 냈다. 여배우의 활약이 두드러진 작품이 거의 없다. ‘암살’은 굵직한 영화인 동시에 여자 주인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이제는 흥행 배우다. ‘도둑들’은 1000만 관객을 넘었고, ‘별에서 온 그대’는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 한류 신드롬을 일으켰다.
“몇 년간 작품 운이 좋았다. 관객의 관점과 제 관점이 일치했다. 저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최근 몇 년간 흥행 성적이 좋다고 해서 앞으로도 대박이 날 수는 없다. 작품 선택할 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좋은 감독, 작가와 호흡을 맞추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출연한 ‘엽기적인 그녀’도 벌써 14년 전 이야기다. 전지현은 어느새 30대 여배우가 됐다. 결혼도 했고, 내년에는 엄마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나이 든다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진심이다. 결혼하고 저에 대한 시선과 평가가 부드러워졌다. 이제 저를 ‘전지현’이란 배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 편해졌다. 일도 가정을 꾸리는 일도 뭐든지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
전지현의 관록과 여유는 최근 몇 개 작품에서 보여준 여배우의 역량을 떠올리게 했다.
“어린 나이에 안옥윤 역을 제의받았다면 이 정도까지 편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연기라는 게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거야?’라고 반문할 수 있다. 답은 없다. 결국, 배우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같은 시나리오라도 작년에 읽은 것과 올해 읽은 것은 느낌이 다르다. 자신을 믿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 된다. 세월이 지나면 표현도 더 다양해진다.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까지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이야기다. ‘타짜’ ‘전우치’ ‘도둑들’ 최동훈 감독과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최덕문 등의 만남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상영시간 139분, 15세이상관람가. 절찬 상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