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경제 제재에 식품 수입 금지로 맞서온 러시아가 유럽산 치즈를 비롯한 밀수된 서방 식품을 대량 폐기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대통령령에 근거해 수백t 분량의 치즈, 과일 등 수입이 금지된 서방 국가의 식품을 압수해 소각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현지 동식물 검역청은 이날 하루 동안에만 약 320t의 식품을 폐기처분했다고 밝혔다.
식품 폐기 처리를 위한 소각로는 러시아 서부 칼리닌그라드주에서 북부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에 이르는 접경 지역에 설치됐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오후까지 벨라루스와 접경한 스몰렌스크에서 밀수로 들어온 55t 분량의 복숭아, 토마토를 폐기 처리했고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또다른 서부도시 벨고로드와 남부 오렌부르크 등에서도 각각 9t, 20t 분량의 치즈를 폐기 처분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캐나다, 네덜란드, 독일산 육류 28t과 폴란드산 사과, 토마토 28t을 압수했다.
러시아 정부 당국자는 “압수 및 폐기 조치가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매일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의회의 한 의원은 금수 대상 식품을 수입하는 사람을 형사범으로 몰아 최고 12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새 법안을 제의했다. 또 한 친(親)크렘린계 청년단체는 슈퍼마켓을 급습해 수입 금지된 유럽과 미국산 식품을 색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들은 과거 2차 세계대전의 기아와 옛 소련시절의 식량난을 떠올리며 이같은 당국의 조처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러시아 정교회의 한 사제는 “(음식물 폐기는) 미친 짓이며 죄악”이라고 비난했다. 방송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전쟁과 혁명 후에 끔찍한 기아를 경험한 국가에서 어떻게 먹는 음식을 폐기 처분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밀수된 식품을 폐기하지 말고 빈곤계층이나 장애인 등에게 나눠줄 것을 요청하는 온라인 탄원 웹사이트에는 27만 명이 넘는 러시아인들이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