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파업도 좋지만...

입력 2015-09-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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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팀장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에 있는 아시아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따금씩 흘러나온다. 이유는 늘 같다. 한국의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 때문.

GM이 이들 문제에 민감한 건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일 거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GM이었지만 세계를 집어삼킨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2009년 6월 1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GM의 운명에 ‘복선’이 깔린 건 1970년대 오일쇼크 때부터였다. 당시 휘발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대형의 미국산 차는 팔리지 않는 대신 소형 위주의 일본 차가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 이에 배가 아팠던 미국 차 업계가 일본차 수입을 반대하면서 사태는 미·일 양국의 통상 마찰로까지 번졌다. 결국 일본 차 업체들이 수출 물량을 자체적으로 규제하기로 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1990년대 들어 유가는 하락했고 소비자들은 다시 SUV와 픽업트럭 같은 대형차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GM 등 미국 차 업계는 마진이 높은 대형차 생산에 주력했다. 덕분에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자금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보험과 연금 지급 등 처우 개선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당시 경영 자문을 맡았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공적 의료보험과 연금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기업이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이렇다 보니 산별 노조 중에서도 영향력이 가장 막강한 전미자동차노조(UAW)를 등에 업은 자동차 업계의 임금은 겉잡을 수 없이 높아졌다. 당시 GM의 시급은 의료보험과 연금, 수당 등을 포함해 73.20달러였다.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하루 8만8181원이다. 전체 산업 평균 시급이 28.48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GM의 시급은 압도적이라 할 만했다.

GM의 시급이 이처럼 높았던 이유는 독특한 제도 때문이었다. 회사는 퇴직한 노동자의 의료보험료와 연금까지 부담했고, 구조조정을 통해 해고된 노동자에게는 ‘잡 뱅크(job bank)’라는 제도를 적용해 재직 시와 똑같은 임금을 보장했다. 이로 인한 인력난과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회사의 몫이었다.

이처럼 GM이 수십억 달러를 인건비에 쏟아붓는 동안 일본과 유럽 자동차 업계에선 친환경 기술이 개발됐고, 세련된 디자인의 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GM은 혁신에서 뒤처졌다는 이야기다.

이런 와중에 2008년, 100년 만에 일어날까 말까 한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하면서 대형차 판매는 급감하기 시작했다. GM 등 미국 차 업계는 적자로 돌아섰고 결국 파산으로 이어졌다. GM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비용 감축을 통해 파산 보호를 신청한 지 4년 만인 2013년에 500억 달러(약 60조원)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모두 갚고, 2014년 미 증시에도 재입성했다.

그러나 GM이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는 판이해졌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은 더 이상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가 아닌, 캘리포니아주 북부 실리콘밸리로 옮겨갔다.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를 중심으로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와 IT 전문가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현재 전체의 10%에 불과하지만 10년 후면 6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커넥티드카(인터넷에 상시 접속된 자동차)로의 전환은 기술 면에선 이미 상당 수준 진행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승용차와 경트럭 제조비용의 10~25%는 소프트웨어 관련 비용이라고 한다. 그동안 자동차 한 대의 경제적 가치의 대부분은 1000개 단위 부품에 의해 산출됐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현대차 노조가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으로 연일 시끄럽다. 정년 연장과 성과급 인상, 임금피크제 반대 등이 파업의 주된 이유라고 한다. 현대차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9700만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국내 전체 근로자 중 상위 3%, 근로소득자 평균 연봉의 3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세계 자동차 산업의 조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을 조립해서 완성차가 만들어지는 시대가 종료될 날도 머지않았다. 만일 조업 환경이 갑자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뀐다면 당장 살아남을 수 있는 근로자는 몇이나 될까.

국민과 고객의 실망은 차치하고, 모처럼 국내에 둥지를 튼 글로벌 기업을 다시 해외로 내모는 원인에 대해선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국내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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