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이유는 두 국책은행을 이끌고 있는 수장의 태생적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선 캠프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 출신인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013년 4월 취임할 당시 “나는 낙하산이 맞다. 하지만 결과로 보여주겠다”며 스스로 낙하산임을 인정한 바 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도 박근혜 정부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덕훈 행장은 박근혜 정권이 막을 연 이래로 금융권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서금회(서강금융인회)의 멤버다. 이 행장은 지난해 수출입은행장으로 낙점된 직후 “낙하산 인사가 무슨 죄냐”며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해 낙하산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 코드는 홍 회장과 이 행장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기업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국책은행 수장으로서의 터프한 역할보다는 점잖게 보신하면서 정치권 의중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이는 두 수장의 해외출장 사례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홍 회장과 이 행장은 임기 동안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등 대기업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국내 기업이나 중소기업의 현장 점검에 소홀했다. 그 대신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 등과 궤를 같이하며 코드 맞추기식 해외 출장에 열을 올렸다.
특히 이 행장의 잦은 해외 출장이 눈에 띈다. 이 행장은 지난해 취임한 이래 지난 7월까지 총 17번의 출장길에 올랐으며, 출장일만 112일에 달한다.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이 2011년 취임 직후 같은 기간 출장을 75일 떠난 것 비교하면 37일이나 더 많다.
출장은 대부분 대통령 순방 수행이었다. 이 행장은 지난해 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와 우즈베키스탄 순방할 때 수행했다.
특히 올해 이 행장이 떠난 총 7회의 출장길 중 4회는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 이 행장은 지난 3월 박 대통령이 중동지역을 방문할 때 경제사절단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4월 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길에도 함께 동행한 바 있다.
지난 3월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한 것도 전형적인 코드 맞추기 출장이다. 표면적으로는 수은과 베를린대학교의 공동세미나 참석 때문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5월 방문한 중국 베이징의 경우에도 박 대통령이 국정 목표로 내세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에 부합하기 위한 코드맞추기라는 색깔을 지울 수 없다.
수출입은행의 기관 특성상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하고 해외 출장이 잦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기업구조조정 단계에 있는 기업이나 해외 중소기업의 현장점검에 소홀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이 행장은 최근 성동조선이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 협약을 체결한 것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성동조선과 관련된 행보를 보인 적이 없다.
특히 올 들어 이 행장은 수출 중소기업을 위해 국내외 현장을 찾은 적이 없다. 반면 이 행장은 지난 1월 중 싱가포르와 인도를 방문해 GS건설 및 포스코의 해외 공장을 견학했으며, 지난 2월에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라오스 등으로 해외 출장을 통해 효성 등 4개사의 해외 현장을 점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