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컴퓨터 동아리서 이택진 대표 만나 ‘아래아한글’ 개발… 1999년 ‘드림위즈’ 설립 포털에선 고전 2006년 ‘포티스’로 세번째 도전
1992년에 방영된 ‘아들과 딸’은 61.1%라는 고공 시청률을 기록했던 국민 드라마였다. 남아 선호사상이 깊게 뿌리내린 집안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귀남(최수종)과 후남(김희애)이 가족과 사회의 가치관과 대립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 드라마로 김희애씨는 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이 시점 IT벤처업계에서도 또 다른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바로 김씨의 남편 이찬진 포티스 대표이사다. 이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벤처 1세대다. 1990년대부터 국내에 태동하기 시작한 벤처 붐은 정부의 육성 정책에 힘입어 스타 벤처인을 배출했다. 그중 한 명이 이 대표다.
인천 토박이인 이 대표는 1965년 인천시 북구(현 인천광역시 부평구)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고 한다. 제물포고를 다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의 지인은 “이 대표가 다니던 제물포고 인근에는 인일여고가 있어 여고생도 많았지만 복숭아뼈가 드러나는 교복 바지를 입고 다닌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럼에도 이 대표는 여고생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당시 이 대표는 농구광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몰래 나와 친구들과 자주 농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또 고등학교 독서 동아리에 가입해 책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제법 공부도 잘해 전교에서 5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삼수 끝에 서울대 공대에 입학한 이 대표는 컴퓨터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컴퓨터 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하며, 벤처 창업의 꿈을 키운 시점이다. 이때 이 대표는 컴퓨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만나 ‘아래아한글’을 개발했다. 아래아한글은 훗날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 설립의 모태가 된다. 이 대표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0년 10월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하며, 벤처 1세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한글과컴퓨터는 설립 초기부터 주목받았다.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MS)보다 앞선 기술력으로 국내 IT업계를 대표하는 벤처기업의 상징이었다. 당시 한글과컴퓨터가 개발한 아래아한글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했고, 1993년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로 매출액 100억원을 넘어섰다. 이어 1996년 9월에는 코스닥시장에 주식을 상장했다. 이 시기 이 대표는 2세 연하인 배우 김씨와 결혼하며 큰 화제를 뿌렸다. 이 대표는 정치인으로 변신도 시도했다. 신한국당 전국구 20번으로 출마해 1997년 11월 말 국회의원직을 승계했지만 6개월 만인 1998년 5월 사퇴했다.
잘나가던 한글과컴퓨터에도 위기가 닥쳤다. 당시 MS가 PC운영체계(OS)인 윈도를 내놓으면서 많은 이용자들이 오피스 제품군으로 넘어갔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시장의 주류인 기업고객 공략에 실패하면서 경영난에 봉착했다.
1998년 외환위기로 자금난이 가중되자 한글과컴퓨터는 부도위기에 처했다. MS로부터 2000만 달러의 투자 양해각서(MOU)로 부도위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한글 소프트웨어를 외국계 회사에 넘긴다는 비난이 거세져 투자유치는 무위로 돌아갔다. 이어 당시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이 주도해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본부’가 결성됐고 ‘한글815특별판’이 절찬리에 판매됐다. 또 전 국민 한컴 1주 갖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며 부도위기를 넘겼다. 이 전 회장의 추천으로 1998년 영입된 전문경영인 전하진씨(현 새누리당 국회의원)가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한글과컴퓨터를 떠나게 된다.
그가 다시 도전한 분야는 인터넷 포털이었다. 1999년 6월 이 대표는 드림위즈를 설립하고 재기에 나선다. 2004년에는 인티즌을 인수해 규모를 확장하며 국대 주요 포털기업으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국내 포털시장이 네이버와 다음커뮤니케이션(현 다음카카오)으로 쏠리면서 드림위즈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드림위즈는 지난해 1월 온라인 광고 대행사 네오브이에 넘어간 상태다.
이 대표는 지금 3번째 도전에 나서고 있다. 2006년 설립된 디지털 방송수신기기 전문 업체인 포티스다. 포티스의 주력 제품은 셋톱박스로 불리는 디지털방송 수신기기다. 지난해 8월 이 대표는 포티스에 20억원을 투자해 개인 1대주주 위치에 올라섰다. 현재 이 대표가 보유한 포티스의 지분율은 6.28%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말 각자대표 체제에서 단독대표 체제로 바뀐 뒤 포티스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현재 포티스가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포티스는 2013년부터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실적 개선에 실패하며 적자에 머물렀다. 이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IT벤처업계에서도 벤처 1세대인 이 대표가 어떤 카드로 실적부진의 늪에 빠진 포티스를 구해 낼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대표도 포티스의 신규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표는 모든 IT 디바이스를 가장 먼저 섭렵할 정도로 얼리어답터의 성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IT업계가 깜짝 놀랄 만한 혁신적인 아이템을 들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출생-학력>
1965년 10월 인천 부평 출생
1984년 제물포고등학교
1989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 학사
<경력>
1989년 한글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 개발, 발표
1990년 ~ 1999년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 사장
1997년 ~ 1999년 한컴네트 대표이사 사장
1997년 ~ 1998년 제15대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
1999년 ~ 2012년 드림위즈 대표이사 사장
2009년 ~ 2012년 터치커넥트 대표이사 사장
2010년 ~ 2012년 KT 사외이사
2014년 포티스 각자대표이사
2015년 포티스 단독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