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면 부가세 포함해 79만9천700원입니다"(조성하 LG전자[066570] MC한국영업FD 부사장)
LG전자의 스마트폰 국내 영업을 총괄하는 조 부사장의 표정에는 결연함이 베어 있었다. 마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출고가 액수의 백원 단위까지도 또박또박 대답했다. 스마트폰 신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정확한 출고가를 공개하지 않았던 업계의 불문율은 그렇게 깨졌다.
지난 1일 공개된 LG전자의 새 프리미엄 스마트폰 'LG[003550] V10'(V10)은 방송용 카메라 못지않은 동영상 촬영 능력에 세컨드 스크린과 듀얼 카메라 등 혁신적인 기능을 자랑했지만 이목이 쏠린 '스펙'은 바로 가격이었다.
LG전자 임원들도 예상한 바였다. 이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도토리 키재기식 사양 경쟁이나 대동소이한 디자인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조준호 LG전자 MC사업본부장(사장)은 "한국은 단통법 이후에 고객들이 스마트폰 가격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다"며 "가격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정했다"고 말했다.
조 부사장도 거들었다. 그는 "스마트폰은 이제 성숙기에 들어섰다. 소비자들은 신제품을 고를 때 지불가치를 가장 많이 고려한다. V10은 향후 국내 프리미엄폰의 출고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가 만든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가운데 출고가가 70만 원대로 책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9만9천700원이면 이통사 보조금과 판매·대리점의 추가 보조금까지 받을 경우 최대 40만원대 초반까지 실구입가가 내려간다. 소비자가 느끼기엔 웬만한 보급형 스마트폰 가격에 가깝다.
삼성전자[005930]가 앞서 출시한 동급(내장 메모리 64GB)의 갤럭시노트5 출고가가 96만5천800원, 갤럭시S6(64GB)는 92만4천원. 1년 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6 역시 출고가가 92만4천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V10은 12만원~16만원 가량 싸다. 아이폰6s의 출고가가 전작 아이폰6와 같게 책정된 만큼 내달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가격 경쟁력에서만큼은 V10에 한참 밀리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V10의 출고가를 두고 아무리 거품을 빼더라도 올 상반기 선보인 G4(첫 출고가 82만5천원)보다는 최소 5만원 이상 비쌀 것으로 예상했었다.
스마트폰의 가격은 디스플레이와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성능 그리고 내장 메모리라 불리는 롬(ROM) 용량에 달렸는데 AP 빼고는 G4보다 모두 사양이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밀어붙인 건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고 판단한 LG전자의 '배수의 진' 전략으로 읽힌다. 출고가를 80만원 초반으로 낮추고도 국내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G4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4일 "LG전자로선 일단 울며겨자먹기 식으로라도 가격을 내려야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정부는 출고가 인하라는 단통법의 목적이 달성된 것으로 자화자찬할 수 있겠으나 제조업계의 제 살을 깎는 고통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