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도 용인에서 발생한 캣맘 사망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이 DNA 분석에 이어 3차원 스캐너까지 동원했습니다.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첨단 수사기법을 총동원해 범인을 끝까지 찾아내겠다는 각오입니다.
얼마 전 검찰은 16년 만에 소환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아더 존 패터슨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혈흔 형태 분석(Blood Pattern Analysis)을 활용한 추가 증거도 법원에 제출했는데요.
한국의 과학수사, 나날이 발전하고 있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DNA 분석도, 혈흔 패턴 기법도 없던 조선 시대에는 어떻게 살인범을 잡았을까요?
“네 죄를 네가 알렸다”와 “소인은 억울합니다”로 이뤄지는 추문만을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조선 시대 과학수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실력이 좋았습니다.
살인사건의 교과서, 바로 법의학서죠? 조선 시대에도 사체(死體) 조사 지침서가 있었습니다. ‘신주무원록’인데요. 최치운과 이세형, 변효문이 세종의 명을 받아 1440년에 편찬했습니다.
중국 ‘무원록’을 저본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원나라 살인사건 판례를 모아 놓은 상(上)권과 사인이 나열된 하(下)권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1430년 율학(법학)의 취재과목으로도 채택됐다고 하네요. 300여 년 동안 조선의 범죄 수사에 활용되던 이 지침서는 영조에 이르러 ‘증수무원록’으로 내용이 보강됐습니다.
기록된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요.
#푸른색 이불 한 채에 덮여 누워 있는 시신 한 구, 옷을 모두 벗긴 뒤 살펴보니 23~24세로 추정되는 남자다. 키는 주척(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으로 7척 8촌. 흐트러진 두발의 길이는 2척 5촌이다. 코에서 피가 흐르고, 전신의 살빛이 누렇다. 구타당한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약물로 인한 사고로 추측된다. 독을 먹었는지 의심스러워 은비녀를 항문에 넣으니 검은색으로 변하고 변을 채취해 가열해 보니 소금 결정이 나타난다. 간수를 마시고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는 은비녀로 독극물 섭취 여부를 밝혀내고 식초로 혈흔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술지게미와 파 흰 부분, 매실 등은 사체의 상흔을 다시 드러나게 하는 데 사용됐다고 하네요.
조선 후기 간행된 ‘흠흠신서’는 최고의 법률 연구서로 꼽힙니다. 조선 시대 대표 실학자 정약용이 저술했는데요. 살인사건 처리가 무성의하고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걸 본 정조가 집필을 명했다고 합니다.
정조의 심리록(판례집)을 보면 “사건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는다면 봉분(무덤)을 파헤쳐서라도 검시를 해야한다. 의심스러운 일로 백성이 억울하게 죽어서는 아니 되며 죽은 자의 원통함도 법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죽은 자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무고한 백성을 잃지 않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란 말이 있죠. 범인은 반드시 잡힙니다. 캣맘 사망과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실이 하루 빨리 밝혀지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