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 5자 회동은 회동 이전부터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야당이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국정 교과서를 규정하고 있어 자신의 선대 문제와 얽혀버린 국정 교과서 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양보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은 방미 전 역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천명했다. 야당도 한 번의 회동으로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회동 전에 의제에 대한 사전 조율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결론도 나오기 힘들다. 그러니까 야당도 회동 전에 이미 합의 도출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회동에 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야당은 왜 회동에 임했고, 청와대는 무슨 생각으로 제안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야당이 진정으로 검정 교과서 유지를 원했다면 합의 없이 끝날 것이 분명한 회동에 응해서는 안 됐다는 점이다.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괜히 들러리나 서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정련은 회담에 응했다. 일부에서는 야당이 국정 교과서 문제를 이슈화하는 진짜 이유는 정치공학적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즉 국정 교과서 추진 문제는 입법 사안이 아니라 행정부의 권한이라는 사실을 야당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렇듯 자꾸 사안을 키우는 것은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번 회동에 야당이 응했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야당이 회동에 응한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야당은 일단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 교과서 정국의 한복판으로 끌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고, 이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을 상대로 싸우는 형국이 되고 이럴 경우 야권의 리더로서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이런 위상 확립을 통해 분당이니 신당이니 하는 야권 내부의 분열 속에서 자신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할 수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일단 대화를 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여론전에서 명분을 쌓으려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경우 오픈 프라이머리와 전략공천 문제를 추진함과 동시에, 5자 회동 때 청와대의 입장을 대신해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투 트랙 전략의 일환으로 5자 회동에 참석했을 수 있다. 결론이 날 수 없는 회동은 이 같은 이유들에서 ‘성황리’에 끝날 수 있었다. 이번 회동은 모두가 승자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은 이번 회동을 통해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디서도 ‘국민’과 ‘교육’은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기에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