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해 1조 3000억원대 범죄를 저지른 현재현 회장이 지난 15일 징역 7년의 실형을 확정받은 이후 동양 사태 피해자들이 낸 민사소송도 탄력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오영준 부장판사)는 29일 동양 피해자 김모씨 등 8명이 유안타증권(옛 동양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변론기일을 열었다. 그동안 법원은 손해배상 금액을 정확히 산정하기 위해 현 회장의 형사사건이 마무리 될 때까지 선고기일을 잡지 않았다.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다음달 26일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다음달 선고가 주목받는 이유는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동양사태 피해자들의 손해액을 산정하는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동양은 그룹 구조조정이 사실상 어렵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CP를 발행한 부분이 문제가 돼 현재현 회장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사실상 변제가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CP를 발행한 것은 사기라는 것이다. 현 회장은 2013년 2∼9월 그룹 경영권 유지를 위해 부실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발행해 판매함으로써 개인투자자 4만여명에게 1조 3000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2013년 2월 22일부터 판매한 CP가 사기라고 판단해 징역 12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부도가 날 것을 알면서 발행한 2013년 8월 이후 부분에만 사기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징역 7년으로 형을 감형했다. 민사사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손해범위를 산정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날 열린 변론기일에서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동양인터내셔널의 순자산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지 않은데, 회생계획 인가 시점에 파산 재판부에 재출한 재무제표가 있다. 금융감독원에서도 이 내용을 바탕으로 평가했다"며 서증을 제출했다. ㈜동양에 투자한 것보다 동양인터내셔널에 투자한 금액 때문에 손해액이 커졌다는 취지다. 동양이 사기의 고의를 가지고 기업어음(CP)를 발행했다는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또 피해자 측은 동양 자산이 783억 원대라고 언급하며 지급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재판부는 "사건 당사자수도 100명이 안되고, 개별 청구금액 역시 크지 않기 때문에 감정으로 처리할 사건이 아니다.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면 재판부가 검토한 뒤 선고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 선고결과는 유안타 증권을 상대로 한 다른 소송의 손해액 산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는 이 사건 외에도 동양사태 피해자 1277명이 유안타증권을 상대로 낸 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 사건에서 김씨 등은 옛 동양증권이 기관투자자가 아닌 정보에 어두운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투자위험성을 설명하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양그룹이 부실을 숨긴 채 CP를 발행한 것은 자본시장법상 투자자 보호의무 위반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