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대호’ 최민식 “김대호씨, 정말 술 한 잔 사고 싶다”

입력 2015-12-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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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최민식이 11일 서울 부암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배우 최민식은 ‘명량’(2014) 이순신 장군 역을 제안받았을 때 이미지가 굳어질 것을 걱정했다. 이순신의 상징성이 그만큼 강했다. 1700만 관객이 ‘명량’을 봤지만 ‘최민식=이순신’ 공식은 성립되지 않았다. 수많은 필모그래피에서 배역마다 존재감 있는 역을 보여 온 최민식의 내공 때문이다.

그런 최민식에게도 신작 ‘대호’(제작 사나이픽쳐스, 배급 NEW)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지리산 산군 호랑이 대호가 100% CG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6개월의 촬영 동안 실체 없는 호랑이를 상상하며 연기한 최민식의 우려도 극에 달했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대호를 의인화해 ‘김대호씨’라고 불렀다. 김대호의 연기력에 ‘대호’의 흥망성쇠가 달려있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11길 서울미술관 루네쌍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한 최민식은 “우리 김대호씨 정말 연기 잘하더라. 안도했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난 8일 공개된 ‘대호’의 언론시사회에서 김대호는 최민식과 절정의 호흡으로 활약해 극을 이끌었다.

“이 영화가 잘된다면 그건 최민식도, 정만식도 아닌 김대호 때문이다. ‘대호’가 이야기하는 주제 의식이 거창해 봤자 김대호가 연기 못하면 안 된다. CG팀이 만들어 낸 김대호의 공이 100%다. 언론시사회에서 김대호의 연기를 보고 안도했다. 정말 좋았다.”

▲영화 ‘대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최민식이 11일 서울 부암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최민식이 연기한 인물은 조선 시대 최고의 명포수로 불린 천만덕이다. 생명을 끊어 먹고사는 업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에 대한 예의와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하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모두가 호랑이를 잡고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총을 놓고 정도를 걷는다.

“포수들에게는 사냥이 호구지책(糊口之策)이다. 호랑이를 잡으면 집 한 채 나온다. 그래서 일제의 호랑이 사냥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류(정석원 분) 같은 인물은 완장까지 차고 호랑이 사냥에 나선다. 그런데 천만덕은 다르다. 이 영화에서 천만덕이란 인물이 대놓고 총질하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천만덕의 가치관 때문에 일본 고관 마에노조(오스기 렌 분)가 대호를 얻지 못한다. 천만덕은 항일투사가 아니었지만 항일을 했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우진 않았지만 살아온 가치관으로 그들의 침략, 야욕, 탐욕을 좌절시켰다.”

‘대호’는 호랑이를 단순한 짐승으로 그리지 않는다. 우리 민족과 긴 시간 함께 해온 조선시대 호랑이는 영물이자 산신으로 종교적 의미를 가졌다.

“어른들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라는 말을 한다. 팔자, 전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정서다. 또 할머니가 손주 군대 가면 장독대 위에 정화수 떠놓고 북두칠성에 빈다. 그런 토속신앙, 윤회사상 등을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 기도하는 마음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대호 즉,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종교다. 호랑이가 신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천만덕이 산군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종교다. 그런 정신이 ‘대호’의 기본 베이스에 깔렸다. ‘산군님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라는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대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최민식이 11일 서울 부암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그런가 하면 천만덕은 강한 부성애를 보여준다. 자기 아들뿐만 아니라 호랑이의 새끼에게도 연민을 느낀다. 우연히 자신이 죽인 호랑이에게 새끼가 딸려 있는 것을 보고 천만덕은 갈등한다.

“원래 개오주(호랑이 새끼) 딸린 암컷은 잡으면 안 된다. 잡아도 수컷 호랑이를 잡아야 한다. 사냥꾼들 사이 불문율이다. 먹을 것도 없고 궁핍한 삶을 살다보니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천만덕은 새끼를 동굴에 놔준다. 천만덕에게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가 강아지나 고양이 새끼를 보면 어떤가. 천만덕은 호랑이 새끼를 보고 아들 석이(송유빈 분)를 생각했다.”

최민식은 아들 역으로 호흡을 맞춘 송유빈에 대해 진짜 아버지처럼 애정을 드러냈다. 송유빈은 ‘대호’가 발견한 충무로 샛별이다.

“중3밖에 안 됐는데 우리가 항상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말하는 거나, 움직이는 것이 70세 먹은 노인네 같다. 말도 느릿느릿, 행동도 느릿느릿하다. 밥 먹는 것도 항상 느려서 ‘먼저 일어나세요’라고 말한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여유가 있어 좋다. 빨리 습득해 연기하는 것은 겉으로는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연기는 체화가 중요하다. 송유빈은 기다리면 한다. 완전히 소화해서 연기하는 스타일이다.”

▲영화 ‘대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최민식이 11일 서울 부암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대호’는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만으로도 관객의 기대를 모았다.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쓴 박훈정 감독에 대해 최민식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며 신뢰를 보였다.

“(박훈정 감독은) 이야기 보따리가 많다. 박 감독에게 ‘혹시 재밌는 시나리오 없나?’라고 이야기하다가 나온 것이 ‘대호’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맞다. 그 이야기들이 지금도 훌륭하지만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호’ 역시 부담이 컸지만 완성됐을 때 얻을 쾌감만 보고 의기투합했다.”

‘대호’는 러닝타임 139분으로 결코 짧은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최민식은 2시간에 집착하는 영화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호’의 경우 인물들의 이전 이야기들이 상당수 편집되며 드라마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비단 ‘대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영화의 현실이 ‘마의 2시간’에 사로잡혀 있다.

“류의 아버지가 천만덕과 같은 포수대에 있었다는 설정이 인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겠지만 결국 마의 2시간 때문에 편집됐다. 2시간에 끼워 맞춰야 하는 그런 점들이 항상 답답하다. 물론 한 회라도 더 걸어야 하는 영화계 현실상 이해는 된다. 소위 말해 명작이라고 일컫는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엄두도 못내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는 4시간이 넘는다. 어릴 때는 졸면서 봤던 영화지만 50세가 넘은 지금은 정말 명작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가 살아난다. 씹으면 씹을수록 음미할 수 있다. 우리도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대호' 스틸컷(사진제공=NEW)

최민식은 인터뷰 말미 ‘최근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김대호씨를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김대호를 만난 것이다. 정말 술 한 잔 사고 싶다. 6개월의 촬영 기간, 프리 기간까지 합치면 1~2년의 시간 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모든 결과가 김대호에게 달려 있었는데 정말 잘해줬다. 그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나?”

‘명량’의 기록적 흥행, ‘올드보이’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등 최민식의 출연작은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이 유독 많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민식은 어떻게 작품을 선택할까?’하는 점이 궁금해졌다.

“느낌이 가는대로 선택한다. 이것도 인연이다. 저도 경력이 있는데 왜 이런저런 생각이 안 들겠나. 그런데 어떡하나?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간다. 마음 가는대로 작품을 해야 고생을 해도 마음이 편하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인물이 되어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하면 후회가 없다. 저도 ‘명량’ 이전에 상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파이란’(2001)도 말도 안 되는 스코어였다. 이렇게 말하면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는데 10명의 관객이 봐도 저와 제작진이 생각한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다면 보람 있다.”

▲영화 ‘대호’의 주연을 맡은 배우 최민식이 11일 서울 부암동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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