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으며 ‘플라톤이야말로 격식을 잘 갖춘 정형화된 음악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는 음악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의 영혼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이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음악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까지 파고드는 최상의 의식화 교재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이런 말도 더한다. “조각이나 건축은 한 공간에 고정된 제약여건 때문에 교육 자료로서의 활용도가 낮으며, 시나 연극의 경우에도 각 개인의 독해력에 따라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진입 장벽이 된다. 거기에 비해 음악은 대중적인 접근성이 훨씬 뛰어나다.” 이런 생각에 비판적인 저자는 나라를 생각한다는 대부분의 성인들의 음악관이 그랬다는 점을 들어서 ‘논어’에서 비슷한 사례를 든다. 정풍(정나라 음악)과 위풍(위나라 음악)은 개인의 심성을 해치고 풍속을 어지럽혀 끝내는 나라를 망하게 했다.
재즈계의 재임스 딘이라 불렸던 인물이 쳇 베이커(1929~1988)이다. 그를 두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에시이’(열림원)에서 “쳇 베이커에게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려 900페이지나 되는 ‘쳇 베이커’(을유문화사)는 그에 대해 다소 뒤틀린 평가를 내린다. “쳇 베이커에게서는 온갖 마약 냄새가 난다”고 한다. 책임감이 없었던 음악가 아버지를 두었던 그는 평생 동안 가족사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가수의 생에 대한 작가의 짧은 요약본이 마치 그의 삶의 전체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그릴 수 있게 만든다. 작가가 이 책에서 인상 깊이 받아들였던 부분을 이렇게 전한다. “이 책은 마약으로 생을 마친 숱한 재즈 뮤지션들의 기나긴 명단을 제공한다. 쳇 베이커는 ‘연주를 하려 할 때 느끼는 압박감’이 마약을 찾게 된 이유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마약에 전 음악가의 어두운 면을 참으로 세세하게 보여준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연주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에서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사는 사람치고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핑계 없는 잘못은 없다.”
이혜숙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주축으로 록 음악을 든다. 특히 이 책의 3장은 신중현과 조용필에게 바친 장이다. 작가는 서태지에게 후한 점수를 아끼지 않는다. “서태지의 등장은 가히 한국 사회의 문화 혁명에 값한다. 1992년 초에 발표된 서태지의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기성 대중가요를 전복시켰고 ‘서태지 이전과 이후는 너무 달라져’ 그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편안했던 가요의 세상으로 결코 돌아가기 힘들게 됐다.”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의 인생 유전도 무척 인상적이다. 이경분의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의 숨겨진 삶을 찾아서’는 1938년 초반까지 조선인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던 안익태가 독일 전역에 불어 닥쳤던 ‘일본 붐’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가를 소개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서 동정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안익태의 변신에는 그의 개인적 기질도 한몫했다. “정치권력은 야심과 명예욕이 큰 예술가일수록 쉬운 먹잇감을 삼는다.” 주말에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