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姫路)를 출발한 9인승 승합차가 나고야(名古屋)를 향해 달렸다. 운전석에 앉은 남성은 피곤한 눈을 부릅뜨고 운전에 몰두했다. 그의 눈엔 피곤함이 역력했다. 혹시 졸음운전이라도 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그의 옆모습에 자꾸만 눈이 간다. 그의 일상이 강행군의 연속이란 걸 알기에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남성은 24년 경력의 골프클럽 디자이너이자 조디아골프 대표 미야지 게이스케(47ㆍ宮地啓介)다.
그는 주 1~2회는 나고야(본사)와 히메지(공장)를 왕복한다. 히메지 공장 일을 돕거나 생산 골프클럽을 확인해야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헤드 디자인 관련 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나고야에서 히메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4시간은 소요된다. 하지만 그가 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좋은 디자인은 예고 없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운전을 할 때 좋은 디자인이 떠오를 때가 많다. 그때마다 메모를 해서 장인들과 회의를 한다.” 그의 말이 리드미컬하게 느껴졌다. 아마 신바람 때문일 거다.
미야지 대표의 신바람에 장단이라도 맞춰주고 싶었다. 기자는 나고야로 가는 4시간의 여행을 함께하며 그의 골프클럽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미야지 대표는 골프클럽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의 골프클럽 이야기보따리는 밤새 풀어헤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어찌 보면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신소재 개발과 미래의 클럽 디자인으로 흘렀다. “앞으론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가 예상하는 미래의 클럽 디자인이다. “지금은 컬러풀한 헤드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디자인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골프클럽 디자이너는 누구보다 플레이어의 입장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은 그저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많다.” 그의 주장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오히려 과거에 출시된 클럽이 플레이어의 마음을 제대로 대변했다고 본다. 초보자는 몰라도 중상급자 이상이라면 이해가 빠를 거다. 투박하지만 심플한 헤드가 주는 짜릿한 손맛이라고나 할까.”
그의 골프클럽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덧 효고현(兵庫県) 고베시(神戸市)에 도착했다. 두 시간쯤 달린 것 같다. 미야지 대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화장실을 들러 손을 씻고 나오니 그가 고베산 소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니쿠망(호빵)을 건넸다. 마침 출출했던 시기였다. 소고기와 채소에 간이 적당이 밴 니쿠망은 맛도 향도 모양도 일품이었다. 기자는 포장지까지 씹어 삼킬 기세로 니쿠망 하나를 뚝딱 먹어치웠다. 기자의 폭풍 같은 ‘먹방’을 본 미야지 대표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의 이야기는 절대 골프클럽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는 클럽 헤드만 보면 어느 지역 어느 공장에서 제작됐는지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각 공장과 장인마다 디자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공장도 크게 줄어 5~6개소만이 낡은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단다.
그는 조디아골프의 경영자이지만 모든 제품을 스스로 디자인한다. 흥미로운 건 그가 공학을 전공한 사람도, 디자인을 공부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고교 졸업 후 부친이 운영하는 회사(미야지테크)에서 어깨 넘어 CNC밀링 기술을 습득한 것이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트에서 수제품 퍼터 헤드를 보고 골프클럽 헤드에 CNC밀링을 적용하게 됐다. 바로 그것이 자신의 골프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다. 선수들 반응도 좋았다. 프로골퍼들의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골프채를 들고 대회장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아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렇다 해도 고독한 길이었다. 글로벌 브랜드의 물량공세와 가격경쟁에선 당해낼 길이 없다. 그에게 무기가 있다면 식지 않는 열정뿐이다. 하지만 그를 더 어렵게 하는 건 수학적 계산으론 풀리지 않는 인간의 감성이다. “단순히 클럽을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는 클럽을 만드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실제 수치와 눈으로 보이는 것, 그리고 골퍼의 감성이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더 힘들고 매력적인 일이다.” 바로 그것이 그가 골프클럽 디자인에 빠져든 이유이기도 하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여건은 그의 투지를 불사르게 했다. 1990년대 초 창업한 그는 독자적이면서 정직한 브랜드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클럽의 질적 문제와 직결됐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좋은 소재를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게 가장 힘들었다. 장인들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하는 것이 내 몫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과정을 기술력과 열정만으로 극복했다.”
사실 그는 장사 수완이 좋은 사람도, 유통과 영업에 능한 사람도 아니다. 오직 골프클럽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그의 전 재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꼭 맞는 클럽을 제공하고 싶다. 내가 만든 클럽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클럽이라도 만들고 싶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즐거운 상상으로 피어난 화색이었을 거다. “지금도 골프클럽 디자인 일이 재미있고 설렌다.” 수십 년간 이어진 고된 작업도 그의 열정을 식히지 못했다. 그 열정이 기적을 낳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