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패킷 감청 사건' 판단 없이 종결… "제역할 못했다" 비판도

입력 2016-02-2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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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수사기관의 '패킷 감청'이 위헌인 지 여부에 관해 5년여간 결론을 미루고 있다가 당사자의 사망을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 회선에서 오가는 전자신호를 중간에서 빼내 판독하는 것을 말한다. 이 조치가 이뤄지면 사실상 범죄 혐의자의 인터넷 이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헌재는 25일 국가정보원의 패킷 감청 피해자 김형근 씨가 패킷감청의 근거 법률인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등에 관해 낸 헌법소원사건에서 심판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간암을 앓고 있던 김 씨는 지난해 9월 사망했다.

헌재는 "김 씨가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과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성질상 한 사람에게 전속적으로 속하는 것이어서 승계되거나 상속될 수 없고, 이 사건이 김 씨의 확정된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심판절차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2010년 검찰은 김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던 중 법원에 통신제한조치 허가를 요청했고, 법원은 통신제한조치 및 대화녹음, 청취가 가능하도록 허가서를 발부했다. 국정원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김 씨의 인터넷 사용 내역을 감시했고, 감청을 마친 뒤 김 씨에게 이 사실을 통지했다.

김씨는 검찰과 법원, 국정원이 자신의 통신 비밀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다.

한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 이 2014년 밝힌 바에 따르면 인터넷 패킷감청 인가를 받은 설비는 2005년 9대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인 2008년부터 급증, 2014년에는 80대를 기록했다.

김 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동안의 이광철(45·사법연수원 36기) 변호사는 다른 청구인을 통해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그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있다"며 "2014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건 심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시간을 끌다가 당사자 사망을 이유로 헌재가 사건을 부랴부랴 형식적으로 끝낸 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헌재가 당사자의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더라도 헌법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있으면 본안 판단을 한 전례도 많은데, 패킷감청이 헌법적으로 허용되는 수사기법인가 하는 중요한 쟁점이 있는 사건에서 제역할을 다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테러방지보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지목해 입을 막는 용도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며 "간첩증거를 조작했던 국정원이 순수하게 권한을 사용할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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