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대북 제재 결의안이 2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지난 1월 북한의 핵 실험이 단행된 후 57일 만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되는 자금과 물품 등을 전방위로 차단하는 내용의 고강도 대북 제재 결의안에 국제사회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결의안 협상은 당초 미국이 요구하는 강력한 제재에 대해 북한 주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중국이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 난항을 겪었다. 막판에는 러시아가 수정을 요구하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초안에는 항공기 연료 공급을 전면 금지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민간 항공기의 북한 국외에서의 급유는 예외로 수정됐다. 석탄 수입 금지에 대해서도 북한 나진항에서 수출되는 외국산 석탄은 제외했다. 나진항은 러시아산 석탄을 싣는 항구로 러시아는 자국의 권익을 의식해 반발한 것이었다. 또한 북한의 무기 거래를 담당하는 조선광업무역개발회사(KOMID)의 러시아 주재 대표가 자산 동결 및 여행 금지 대상 명단에서 제외돼 추가 제재 대상 개인은 당초 17명에서 16명으로 줄었다.
이번 제재에서 가장 주목 받는 건 북한의 대중 자원 수출 제한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는 북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하 자원 수출로 중국에서 얻을 수 있는 자금은 한국이 조업을 중단한 개성공단에서 얻을 수 있는 외화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강도높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예상하고도 북한이 핵 실험과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한 건 왜일까. 이는 국제 사회의 제재의 실효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제1차 핵 실험을 강행한 2006년 이후 10년도 안돼 유엔의 제재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핵 실험과 함께 미사일 발사까지 강행했다. 작년 1월 핵 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 제재 위원회 전문가 패널 조사 결과, 국제 사회의 제재는 실효성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결의안도 러시아의 요청으로 당초 2일로 예정된 표결이 하루 연기되는 등 결의안 내용 일부가 완화됐다. 북한은 앞으로도 국제 사회의 제재의 실효성이 줄어들 것으로 얕잡아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광물 자원과 항공 연료 금지에다 북한을 출입하는 모든 화물 검사까지 담았다. 군사 목적의 자재 유입 뿐만 아니라 통치와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지원하는 외화벌이 수단도 차단했다. 특히 그동안 강력한 제재에 부정적이었던 중국이 미국과 함께 제재 초안 작성에 참여하는 등 전과는 다른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심지어 중국은 결의안이 채택되기도 전에 북한산 석탄 등 광물 자원 거래 금지에 착수했다.
이처럼 냉각된 북한과 중국 관계는 김정은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외화벌이 수단이 막히면 통치자금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개성공단 조업을 중단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제 사회가 돈줄을 조이고 나서면서 김정은은 합법적인 외화벌이 수단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해외파견 노동자 모집 요건을 완화한 것이 일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개성공단 노동자의 임금 대부분을 착취했다. 또한 전세계 40여개국에서 5만~10만명에 이르는 북한의 이주 노동자는 ‘충성 자금’ 명목으로 자신이 벌어들인 돈의 90%를 상납한다. 이 상납금은 김정은의 비자금을 총괄하는 ‘노동당 39호실’ 금고로 흘러들어가는데, 그 금액이 매년 수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전개하는 북한식당도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생활고로 인한 민심이 언제 폭발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현재 피폐한 북한 경제에 불안감을 안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당과 군 간부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한편 서민 사회는 배급제도가 무너져 사실상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국제 사회의 제제로 자금과 물품 공급이 차단되면 김정은조차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