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중 정치경제부 차장
비례대표 의석은 정당득표 유효투표의 3% 이상 득표했거나 지역구 선거에서 5석 이상 당선된 정당을 대상으로 득표 비율에 따라 할당한다. 유권자는 투표 용지에 지역구 후보와 별도로 하나의 정당을 선택하고, 이것으로 각 정당이 가져가는 비례대표 수가 결정된다. 비례대표 후보의 이름은 투표 용지에 없다.
그러다 보니 많은 유권자가 지지하는 정당을 단순하게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례대표 후보가 누구든 득표에 큰 변수가 되지 않는 이유다.
비례대표는 앞 순번만 받으면 지역구보다 훨씬 손쉽게 당선된다. 그래서 긴장감도 없고 선거에 적극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비례대표는 선출 방식만 다를 뿐 지역구 의원과 똑같은 권한과 대우를 받으며 의정 활동을 한다. 허투루 뽑아선 안 된다.
손쉽게 당선되다 보니 의정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많지 않다. 19대 국회 비례대표의 이름을 10명 정도 대보라고 하면 대답할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그만큼 활동도 저조하고 일도 안 했다는 증거다.
병폐도 적지 않다. 계파별 나눠먹기에 ‘돈 공천’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비례대표 제도의 전신인 전국구 제도가 처음 생길 때부터 공천헌금 논란은 많았다. 수면 위로 불거진 건 18대 총선이 있던 2008년이다. 당시 창조한국당, 친박연대가 비례대표 공천 헌금을 받은 사건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가 인정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친박연대 비례대표 후보로부터 돈을 수수한 서청원 의원은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2012년 19대 총선 때에는 새누리당 현영희 전 의원이 공천을 청탁하며 정치권 인사에게 5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최종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800만원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공천헌금의 지저분한 단상이다.
돈 문제를 떠나 19대 총선 당시 올림픽에서 돌려차기 한 방으로 비례대표를 거머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법당국의 조사 때 국정원에 불리한 진술 하나로 야당의 비례대표를 받은 사람도 있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금도 집권 여당 권력자와의 친분으로 전문성과 전혀 무관한 인사들이 당선권 비례대표 순번에 거론되고 있다.
비례대표 제도는 애초 직능별로 전문성 있는 사람들과 소외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들이기 위해 마련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부족한 2%를 채워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돈 공천, 친분 공천이 이어진다면 비례대표를 굳이 선출할 이유가 없어진다.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제도를 없애는 게 어렵다면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나쁜 관행을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
각 당에서 어떤 비례대표 후보들이 번호표 몇 번을 쥐는지 살피고 검증해야 한다. 자질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후보가 있다면 그 당에 정당 투표를 해선 안 된다. 거대 양당에서 뽑아주고 싶은 비례대표 후보가 없다면 제3, 제4의 정당에 투표하는 것도 방법이다. 표로 심판해 결과를 보여줘야 정치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