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전은 언제나 위대하다. 인공지능에 맞선 바둑 이세돌 9단의 도전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기는 승패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위대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바둑기사에서 인류의 영웅으로 전 세계적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이세돌의 대국 후 인터뷰를 총정리했다.
◆제1국 이세돌 敗-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랐다.”
이세돌 9단은 경기 전 “3승 2패가 아니라 5전 전승이냐 한 번 지느냐의 문제다”라며 알파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바둑계 역시 “인공지능이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을 섭렵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결과는 알파고의 불계승이었다. 이세돌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놀랐다”며 “초반의 실수가 끝까지 이어졌다. 알파고가 대국을 풀어나가고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것이 놀라웠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이세돌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결과는 충격적이지만 즐거웠다. 앞으로가 굉장히 기대된다”고 말했다.
◆제2국 이세돌 敗-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정말 완패다.”
2연패는 이세돌 뿐만 아니라 바둑계 전체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알파고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세돌은 “오늘 바둑은 내용상으로 보면 완패다. 이제는 할 말이 없을 정도”라며 “한 순간도 제가 앞섰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알파고가 완벽한 대국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또 “최소한 한 판을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어렵기 때문에 초반에 승부를 보는 것이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고 언급했다.
◆제3국 이세돌 敗-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알파고의 도전’이 아닌 ‘인간의 도전’이 됐다. 어느새 이세돌은 도전자의 위치로 내려가 있었다. 승부에 상관없이 이세돌의 도전이 위대하다는 말도 나왔다. 1200개가 넘는 컴퓨터로 연산하는 알파고의 능력이 반칙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우샤인 볼트와 경주용 자동차가 시합한 경우”라며 대국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세돌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놀라운 프로그램이지만 아직은 신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다”며 “분명히 약점은 있다. 1, 2국에서도 조금씩 약점을 보였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세돌은 또 “제가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라며 “사람과 대국이면 모르겠는데 알파고와 승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제 능력의 부족이다”고 말했다.
◆제4국 이세돌 勝- “이번엔 백으로 이겼으니 마지막에는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
3연패 후 침착했던 그는 첫 승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마지막 5국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리할 수 있는 흑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알파고와 진검승부를 벌이겠다는 그만의 승부욕이었다.
이세돌은 대국 후 “값어치를 매길 수 없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1승이다”며 “3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어 그는 “알파고가 노출한 약점은 크게 2가지다. 백보다 흑을 힘들어하고, 예상치 못한 수가 나왔을 때 버그 형태로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며 “78수는 신의 한 수라기 보다 그 상황에서는 그 수밖에 둘 게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세돌은 마지막 5국에서 “흑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흑으로 이기는 게 더 값지기 때문에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5국 이세돌 敗- “더 발전하는 이세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4국에서의 승리는 전 세계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지만 이세돌은 결국 패했다. 하지만 실망은 없었다. 이세돌은 패배 후에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승부근성으로 수많은 팬들에게 인간의 가치를 입증했다.
15일 280수 만에 불계패한 이세돌은 대국 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아쉽다. 아쉬움이 크지만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분들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더 발전하는 이세돌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또 “알파고의 수법들을 보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앞으로 연구를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