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고향엔 원추리가 다시 핀다

입력 2016-03-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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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봄날 옛집에 가다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만한 생을 펼쳐 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며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면 어머니는 마늘밭이나 마당가의 지푸라기처럼 허접한 쓰레기들을 모아 불을 놓았다. 물기를 머금은 흙이 스펀지처럼 부풀고 겨우내 짓밟히고 버림받았던 것들이 푸른 연기가 되어 몸을 바꾼다. 울타리 아래나 밭 둔덕 어디쯤 외진 곳에서 원추리가 잎을 뾰족하게 말아 쥐고 올라오는 것도 이 무렵이다.

고향은 어디인가. 사전적으로는 나고 자란 곳이거나 조상이 살던 곳이다. 오랜 농경사회를 거치며 우리에게 고향은 당연히 시골이나 농촌을 연상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이 도시화하고 인구의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나고 아파트에서 사는 걸 감안하면 지금 농촌에 고향을 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래도 그곳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한참은 더 남아 있을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내 고향도 그렇다. 살던 집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소를 먹이러 다니던 뒷산에는 근사한 펜션들이 들어앉았다. 벼이삭 하나 배추 한 포기도 정성을 다해 기르던 땅들은 그냥 놀고 있다. 땅에서 나는 것들을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낯선 사람이 되어 그곳에 간다.

정월이면 동네 아낙들 토정비결 봐주던 아무개네 막내라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대학 안 보내준다고 단식 투쟁하다가 밤으로 몰래 따먹던 자두나무도 사라졌다. 어릴 때 베어 두리반을 만들었던 피나무만 다시 자라 옛 집터의 뒤란에서 거인처럼 나를 내려다본다. 되물릴 수 없는 것은 늘 회한과 그리움을 남긴다. 그래도 농촌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아직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모든 게 다 변해도 거기에는 영원성을 지닌 자연이 있고 그 안에 시냇물 같은 유년과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산그늘에 잠긴 마루에서 어머니는 빨래를 개시며 아직 정처를 잡지 못한 자식이 못 미더워서 뭔가 자꾸 다짐을 받으려 한다. 그게 싫어서 나는 공연히 퉁퉁거리며 당신의 마음을 못내 아프게 한다. 다시 봄이다. 설혹 내가 그곳에 못 가더라도 원추리는 소년처럼 다시 꽃을 들고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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