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작년 12월 캘리포니아 샌 버나디노 테러 용의자가 쓰던 아이폰5C의 잠금해제에 성공했단 사실이 겉잡을 수 없는 파문을 낳고 있다. 국가안보 면에선 일단 안도했으나 사법 당국이 애플의 아이폰의 보안 결함을 밝혀낸 만큼 이용자의 사생활 보호는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이버 사찰이 횡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28일(현지시간) 아이폰 잠금해제에 성공했다며 애플에 대한 소송도 취하한다고 밝혔다. 더 이상은 애플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의미다. 법무부는 어떻게 아이폰 잠금을 해제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단지 “제3자의 협력을 얻어 성공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통신사는 일본 아이치 현에 있는 전자부품 관련 기업의 산하의 잠금해제 기술을 가진 이스라엘 기업이 협력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업은 일본 언론매체에 “답변할 수 없다”면서도 아이폰 잠금을 해제한 소프트웨어는 일본 경찰에도 도입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공의 안전과 사생활 보호를 둘러싼 FBI와 애플의 공방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양측은 아이폰 잠금해제 협조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심지어 법정 공방으로까지 갈 뻔 했다.
수사관들은 이날 “샌 버나디노 총격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디지털 정보를 수사기관이 확실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에게 여전히 우선 과제다. 관계 기관의 협력을 얻어, 혹은 협력을 얻지 못하는 경우 사법 시스템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샌 버나디노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파키스탄 출신의 리즈완 파뤼크와 부인 타쉬핀 말리크는 작년 12월 샌 버나디노 카운티의 복지시설에서 총격을 가해 14명을 살해하고 사살됐다. 당시 부부는 소셜 미디어에 이슬람 무장세력 ‘이슬람 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수사 기관은 이 테러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들이 쓰던 아이폰5C의 잠금을 해제하려 했으나 자력으로는 불가능해 애플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결국 제3자의 손을 빌려 아이폰 잠금해제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애플과 애플을 옹호하던 기업들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애플은 “이용자의 데이터에 정부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지원을 거부해왔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다른 정보기술(IT) 대기업도 애플의 입장을 옹호했다. 우선 애플은 명성을 지키기 위해 결함을 서둘러 찾아 수정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애플은 당시 자신들도 잠금 해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만약 아이폰의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면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고 미 정부에 요청한 만큼 실제로 요청할 지도 관심사다.
앞서 유엔의 자이드 알 후세인 인권 최고 대표도 이달 초 “법원의 협력 명령을 강제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국장으로서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형사 수사는 인명을 구하고 아이들을 구원, 휴대전화 정보 입수를 가능하게 하는 수색 영장 덕분에 테러 공격을 저지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주요 외신들은 IT 업계와 미 사법 당국의 공방은 일단락됐으나 논의는 더욱 불확실한 단계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전세계 애플 단말기를 약화시키는 보안 취약점을 미국 정부가 알게 됐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