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 선하 어떻게 됐어요?
엄마: 지난번에 면접까지 가서 떨어졌잖아. 11명 중 9명 붙는 거라 합격한 거나 다름없다고 그때 아줌마 엄청나게 좋아했었는데….
나: 선하 올해 서른 아녜요? 또 시험 본데요?
엄마: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니까 포기를 못하겠나봐. 지난달에 필기시험 보고 체력검사 준비하고 있데.
선하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입니다. 키, 몸매, 외모 모든 걸 다 갖췄죠. 사근사근한 성격에 공부까지 잘해 엄마들 모임에선 가장 이상적인 자식상(?)으로 통합니다. 딸들 사이에선 질투의 대상이고요. 그나마 전 나잇대가 달라 비교 대상에서 비켜나 있지만, 동갑내기인 제 동생은 선하 때문에 스트레스 꽤 받았습니다.
그런 선하가 3년째 공시(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졸업 후 2년간 취업준비를 했는데요. 잘 안됐나 봅니다. 원래 머리가 좋으니 금방 붙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선하는 아직도 노량진 공시촌에 있습니다. 지난해 면접에서 낙방한 후 “계속 시험 준비할 거냐”란 아줌마 질문에, 선하는 “이젠 갈 데가 없다”고 했다고 하네요. 저 같아도 미련의 끈을 못 놓을 것 같습니다. 활발한 아이였는데, 의기소침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선하가 여경이 되려는 이유는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은 스스로 사표 쓰지 않으면 60세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공무원 연금이 개혁되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 기업보다 조건이 좋죠. 상사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도 쓸 수 있습니다.
박봉 역시 옛말입니다. 지난해 공무원 평균연봉은 5600만원(세전)에 달합니다. 위험수당이 많은 경찰과 소방관은 총 급여가 더 많고요. 일반직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좀 적습니다. 가장 월급봉투가 얇은 9급 지방직 공무원도 급식비ㆍ직급보조비ㆍ정근수당 등을 합치면 초임이 2600만∼2700만원 가량 됩니다. 대기업(2015년, 3500만원)보다 적지만 중소기업(2190만원)과 비교하면 훨씬 후하죠.
“똑같은 바늘구멍이라면, 차라리 공무원이 낫잖아요.”
예전 공시는 스펙 부족한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공시촌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청춘들이 수두룩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3만3000명의 취준생 가운데 22만명(35%)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4년(18만5000명, 28%)과 비교하면 1년 만에 20% 가까이 늘었네요.
벚꽃 비가 내리던 지난 주말(9일) 치러진 9급 공채 필기시험에 22만명이 몰렸다 하니, 공시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갑니다.
공무원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큰 탓일까요? 지난주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혐의로 20대 청년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물론 전국이 발칵 뒤집혔죠. 국가 1급 보안시설이 뚫렸으니까요. 황교안 총리도 관계부처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불호령을 내렸죠.
하지만 이 같은 논쟁 속에 ‘공시생’은 없습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지 한편 이해가 간다. 뉴스 볼 시간도 없는 공시생들은 별 관심도 없겠지만….”
범죄행위를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이해된다’는 청춘들의 목소리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11일) 오후 전해진 ‘정부청사 보안대책 마련에 민간전문가 7명 참여’ 기사보다, ‘공시생 우울증, 일반인 3배’란 헤드라인에 더 눈이 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