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출자, 여신제도를 활용한 일반 및 특별대출 등 가능할 듯
한국판 양적완화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은행이 관련 재원을 지원하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도 기업구조조정 요청이 오면 논의할 수 있다는 게 공식입장이라는 점에서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는 지원할 수 있음을 내비친 바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은 발권력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크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동원하면 국가운용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박승 전 한은 총재도 “개별기업이나 산업 문제에 중앙은행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발권력 논란은 잠시 접고 과연 한은이 해운업과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자금지원을 하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지 짚어본다.
우선 산은과 수은 출자의 경우 산은 출자는 불가능하지만 수은 출자는 가능하다. 수출입은행법 4조 자본금 규정에 ‘수출입은행의 자본금은 15조원으로 하고, 정부, 한국은행,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른 한국산업은행, 은행법 제2조제1항제2호에 따른 은행, 수출업자의 단체와 국제금융기구가 출자하되, 정부 출자의 시기와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한은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산업은행법 5조 자본금 규정엔 ‘한국산업은행의 자본금은 30조원 이내에서 정관으로 정하되, 정부가 100분의 51 이상을 출자한다’고만 돼 있다. 실제 한은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수은에 출자한 바 있다.
◆ 산금채, 인수 정부보증하면 가능..매입은 정부가 보증하거나 금통위가 결정하거나
4·13 총선 과정에서 강봉균 위원장이 언급하고,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한국판 양적완화의 골자는 한은으로 하여금 산업은행채권(산금채)를 인수토록 하는 것이다.
현재 한은법 76조 정부보증채권의 직접인수 부문에서는 ‘한국은행은 원리금 상황에 대하여 정부가 보증한 채권을 직접 인수할 수 있다’고 정해놓고 있다.
또 발행시장에서의 직접인수가 아닌 유통시장에서의 매입도 한은법 68조 공개시장조작 부문에서 국채와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한 유가증권, 그밖에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유가증권으로 한정하고 있다.
산금채는 현재 정부보증채권이 아니다. 이에 따라 한은이 인수토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보증은 필수다. 반면 매입은 정부가 보증을 하거나 금통위가 정하면 된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일환으로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채권(MBS)을 한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대상 채권에 포함시킨 바도 있다.
◆ 일반대출·특별대출, 금통위가 정하면 가능
한은 여신제도를 활용한 대출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소위 말하는 특별융자(특융) 내지 특별대출이다.
우선 한은법 64조 금융기관에 대한 여신업무 부문에서 정부가 보증한 채무를 표시하는 유동증권이나 그밖에 금통위가 정한 증권에 대해 여신업무를 할 수 있다고 정했다. 다만 1년 이내 기한부 대출이라는 점에서 만기가 짧다. 설령 대출이 이뤄진다 해도 기업구조조정이 하루아침에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번 롤오버(만기연장) 문제가 불거질수 있다.
좀 더 긴급을 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한은법 65조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여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금조달 및 운용의 불균형 등으로 유동성이 악화된 금융기관에 긴급히 여신을 하는 경우 금통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여신이 가능하다.
◆ 현대상선·한진해운에 직접대출, 법리논쟁 치열할 듯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 아닌 아예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있는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 대우조선, STX 등에 직접대출도 가능할 수 있어 보인다.
한은법 80조 영리기업에 대한 여신부문을 보면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79조 민간과의 거래 제한에도 불구하고 금통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영리기업에 여신할 수 있다.
다만 조항에 ‘금융기관이 아닌자로서 금융업을 하는 자 등’이라는 문구에 대한 법리논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법 취지상 ‘금융기관이 아닌자로서 금융업을 하는 자’라는 것은 통상 제2금융권을 지칭하고 있어서다.
반면 ‘등’에 무게를 둘 경우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또 ‘금융기관 외의 법인이나 개인과 예금 또는 대출 거래’와 ‘금융기관 외의 법인이나 개인의 채무를 표시하는 증권의 매입’을 제한한 한은법 79조의 예외조항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문이기도 해서다.
◆ 금융중개지원대출, 중소·중견기업 지원 취지 무색
한은이 기업지원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겠다. 이는 한은법 64조에 근거한다
최근까지도 한도가 급증해온데다, 지원대상자도 기술형창업기업에서 창업기업으로, 중소기업에서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일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금통위에서 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한도를 부여하면 가능할수 있어 보인다.
다만 우선 이 프로그램 취지가 기본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에 있다. 대형 해운사와 조선사가 걸린 구조조정에 지원하는 것은 이같은 기본 취지를 무색케한다. 아울러 이 프로그램은 시중은행이 관련 기업에 대출하고 사후적으로 한은이 은행권에 대출한다는 한계가 있다.
◆ 산업은행 대출후 통안채 상대매출, 가능하나 규모 적고 1년 단기
한은법 64조와 69조에 근거해 산업은행에 대출후 통화안정증권을 상대매출하는 방안도 있다. 현재 회사채정상화방안과 관련해 한은이 산업은행에 대출해 준 규모는 3조4313억원. 산은은 이 자금으로 통안채 1년물 3조4500억원어치를 상대매출했다. 산은은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차익 500억원을 신용보증기금에 출연했다.
다만 이 경우 실제 출연할수 있는 규모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1조 내지 2조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또 대출기간이 1년에 불과한 점도 향후 롤오버에 대한 문제가 지속될수 있다.
◆ 정부 대출, 정책취지 무색에 초단기용
한은법 75조 대정부 여신을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할 수 있겠다. 올해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일시차입할 수 있도록 국회로부터 승인받은 규모가 30조원(통합계정 기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제도 취지상 정부는 한은에 일시 부족자금 용도로 빌리고 있는데다 통상 14일 정도씩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또 마이너스통장처럼 그때그때 빼서 쓸 수 있지만 매 건마다 한은과 협의해야 하는 점도 제약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