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화가 조영남 씨가 '대작(代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무명의 작가 A씨는 조영남 씨가 대작 작가인 자신의 그림에 덧칠과 서명만 한 뒤 수익을 챙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자신에게 준 돈은 작품 당 1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에 조영남 씨는 ‘업계 관행’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사기죄가 성립되는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림값 도대체 어떻게 결정하는 거야?”
기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그림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인 것 같지만 사실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작품의 가치를 넘어 투자의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요. 미술학계에서는 그림의 가격 결정 요소를 통상 △작품 △작가 △외부 요소(경제ㆍ유통 환경)로 구분합니다.
작품 요인부터 살펴볼까요? 그림 가격을 매기는데 가장 중요한 건 ‘아름다움’입니다. 예술적 가치 말입니다. 작가의 화풍이 당시의 시대상과 얼마나 들어맞는 지가 관건인데요. 최근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우리나라 ‘단색화(Dansaekhwa)’ 기법이 주목받고 있죠. 지난해 10월 홍콩 경매시장에서 역대 최고가(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된 김환기 화백의 ‘19-Ⅶ-71 #209’가 대표적입니다. 이 그림은 반복적 행위를 통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는데요. 복잡한 현실을 부정하는 거죠.
같은 작가가 그린 비슷한 화풍의 그림이라면 크기가 큰 게 비쌉니다. 이를 ‘호당 가격’이라고 하는데요. 엽서 크기인 ‘1호’가 최소단위입니다. 이 밖에 △얼마나 잘 보존돼 있는지 △재료는 무엇인지(유화 또는 수채화) △어떤 소재 위에 그렸는지(캔버스 또는 나무패널) 등도 그림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누가 그렸는지도 아름다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번 조영남 씨 대작 논란도 ‘작가적 요소’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우선 잘 알려진 작가일수록 그림값이 비쌉니다. 전시ㆍ수상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평론가들이 어떤 평을 내렸는지가 척도로 활용되죠. 작가의 서명도 작품 신뢰도를 높이기 때문에 중요한 가격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작가의 생존 여부입니다. ‘사망 효과(Death Effect)’란 말이 있을 정도죠. 희소성 때문인데요. 작가의 사망은 그의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는 것(한정성)을 뜻합니다. 지명도가 있었던 작가였다면, 찾는 사람은 많아지게 되고 가격은 크게 올라갑니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의 경우도 그가 숨을 거둔 후 작품 가격이 수십 배나 뛰었다고 하죠.
작품의 유통과정도 작가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한데요. ‘믿을 만한 경매회사를 통해 작품이 매매됐는가’가 핵심입니다. 전 세계 500여개가 넘는 경매회사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곳은 미국의 크리스티(Christie)와 소더비(Sotheby)라고 하네요.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Andy Warhol)
‘살아있는 현대 미술의 전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포스트 모던 키치의 왕’ 제프 쿤스(Jeff Koons)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십니까?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붓을 든 건 조수죠. 명백한 대작(代作)이지만, 이들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 십 년간 업계 관행으로 굳어진 것에 이제 와 사람들이 발끈하는 이유가 뭘까요? ‘100% 조영남의 그림’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 아닐까요?
앤디 워홀처럼 “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먼저 말했다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