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본회의를 끝으로 제19대 국회의 입법 활동이 종료됐다. 4년간의 임기 동안 끊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으로 ‘가장 일 안 한 국회’라는 오명을 남겼다. 세월호 참사와 공무원연금 개혁 등 대형 이슈들과 국회 선진화법은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았다.
각종 갑질과 막말, 추문, 비리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여러 사건에 연루돼 사퇴한 의원만 역대 최다인 23명에 달하는 등 어두운 민낯을 드러냈다.
◇ 경제 살리기 끝내 외면 = 전체적인 법안 처리율을 봐도 19대 국회가 얼마나 일을 안 했는지 알 수 있다. 19대 국회에 접수된 1만7779건의 법안 중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법안만 1만 건이 넘는다. 법안 처리율은 역대 최저인 43% 수준에 그쳤다.
특히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차례에 걸친 읍소와 국민의 울부짖음에도 끝까지 민생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해가 수 없게 됐다. 관광진흥법과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 크루즈법 등 국정 숙원법안 다수를 처리했지만, 폐기된 경제 살리기 법안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인기영합주의에 함몰돼 졸속으로 법안을 처리하면서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낳았다.
사업권(특허)을 기존 10년에서 5년마다 재심사하고 사업권의 자동갱신을 폐지하는 관세법은 대표적인 졸속법으로 꼽힌다. ‘면세점은 대기업의 특권’이라는 반대기업 정서를 이용해 법 개정이 추진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법안 심사 당시 사업권 재심사 기간 축소 여부를 심사하는 데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관세법이 개정되면서 문을 닫게 된 롯데와 SK면세점 등은 당장 수천억 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다량의 실직자도 유발했다. 정부가 3월부터 면세점 특허 기간을 다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19대 국회에서의 관세법 재개정은 실패했다.
김영란법도 대표적인 포퓰리즘법이다. 이 법은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은 5만원으로 정했다.
당장 이 법이 시행되는 9월부터 명절 선물 등으로 인기가 많은 농축수산물 관련 업계와 외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 매출 감소 등 내수 산업이 급속도로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실제 업계의 반발도 극에 달한 상황이다. 20대 국회가 열리면 법에서 규정하는 ‘선물’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는 등 내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은 소비자 차별을 해소하고 선택권을 확대시키는 긍정적 효과는 있었다. 또 단말기 출고가를 낮추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단말기 지원금 규모가 크게 축소돼 실제 소비자 혜택이 커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불법 보조금 등 변칙적 영업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평가다.
이 법들 대부분은 20대 국회에서 재개정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 국정원 댓글과 세월호 파동 = 19대 국회는 개원 전부터 불거진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으로 정쟁을 시작했다. 당초 예정보다 33일이나 늦어진 2012년 7월 2일에서야 원구성을 마쳤고, 대선정국으로 국회는 멈춰섰다.
19대 국회 전반기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논란으로 여야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국정조사를 두고 건건이 충돌하면서 야당은 서울시청 앞에서 100일이 넘는 기간 천막 농성을 이어가기도 했다.
후반기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정국이 다시 얼어붙었다. 이 여파로 후반기 역시 원 구성은 예정보다 한 달 정도 늦어졌다. 미래창조과학통신위원회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5개월간 한 차례의 상임위도 열리지 않았고, 본회의는 151일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해 법안처리 0건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세월호특별법은 협상을 시작한 지 206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한 연장과 특검 실시 등 세월호의 파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사상 최초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고 소속 의원의 의원직을 상실시키면서 또 다른 정쟁을 낳기도 했다.
이외에 공무원연금개혁, 노동개혁 및 국정교과서 문제 등으로 19대 국회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정부여당이 추진한 테러방지법 처리 과정에선 야당 의원 38명이 9일간 192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 막말과 갑질, 추태 최고조 = 19대 국회에서는 막말과 갑질, 추태도 여느 때보다 많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여야는 당 내·외적 갈등과정에서 정제되지 못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2012년 5월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분석한 결과, 한 차례 이상 부적절한 발언(막말)으로 논란이 됐던 의원은 73명에 달했다.
새누리당의 경우 가장 최근으로는 총선을 앞둔 3월 친박(친박근혜)계 실세로 꼽힌 윤상현 의원이 취중 통화 중에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김무성이 죽여버리게, 죽여버려 이 XX. 다 죽여”라고 말했다가 언론에 공개돼 탈당했다.
상대당을 향한 거친 발언도 수시로 터져나왔다. 하태경 의원은 김정일 사망 3주기를 맞아 이희호 여사의 조화를 전달하기 위해 방북하려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을 향해 “김정은 정권의 십상시, 김정은 정권의 내시 역할 비슷하게 그렇게 한 사람”이라고 했다.
야당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과 상대당을 겨냥한 막말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2013년 당시 민주당 홍익표 의원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총리”라고 발언했다가 원내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용득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를 대상”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갑질 행태과 추문도 여전했다.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의 평소 알고 지내던 40대 여성을 호텔로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결국 당을 떠나야 했다. 같은 당 박대동 의원은 자신의 비서관으로부터 월급 일부를 정기적으로 상납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 의원은 “월급을 내놓으라고 압박한 적이 없고 사실이 왜곡되거나 과장됐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총선을 앞두고 컷오프 됐다.
야당에서도 더민주 노영민 의원이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던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관 공기업에 시집을 강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노 의원은 청주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사용하고 반납하지 않은 카드 단말기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두고 석탄공사와 광물자원공사에 책을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