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일단 개별 기업의 생사 문제에 정부가 나서는 것이 적절한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경우, 개별 기업의 생사 문제를 두고 백악관에서 회의가 열렸다는 경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왜 개별 기업의 생사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첫째 이유로는 형평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망해가는 특정 기업을 정부의 혈세를 투입해 살리는 것은 동종 업종의 다른 기업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엄청난 불공정행위가 된다. 어느 기업은 살리고 어느 기업은 죽이느냐는 결정에 관해 얼마든지 시시비비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가 특정 기업의 생사에 관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치권이 또한 옳으니 틀리니 관여하게 되고, 그러면 아무 상관도 없는 언론까지 가세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한마디씩 떠드는데 어찌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이 날 수가 있겠는가? 원래 구조조정이란 가장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진 소수의 관계자들, 예컨대 채무자인 해운사와 채권자인 금융기관만이 모여 신속하게 결정하는 것이 정답이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선출직 정치인이나 언론이 어떻게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할 수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정부가 특정 기업의 문을 닫게 하면 해당 기업의 근로자들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머리에 끈을 두르고 또다시 광화문 거리를 메우게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불가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또한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다. 바로 산업은행이라는 정책금융의 어두운 뒷그림자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금융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산업은행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정부가 판단한 유망 업종에 정책적으로 자금을 공급하고 정책적으로 해당 업종의 소수 기업들을 대기업으로 육성해 왔다. 그러한 과거의 성공이 이제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찬란한 성공신화를 써 온 대기업들은 하나 둘씩 구조조정을 강요받는, 덩치만 큰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반면, 과거 신속하게 자금지원 기능을 담당해 주던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은 구조조정에 관한 한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준관료적 조직으로 변해 버린 채, 정부의 판단만을 기다리는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2015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부실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 은행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보면 국책 은행은 일반 은행에 비해 평균 2.5년이나 구조조정 대응이 느리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조정을 담당할 금융산업을 먼저 구조조정하는 게 시급하다는 점을 재확인해준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론적이지만 민간 산업의 구조조정 기능을 금융시장에 돌려준 다음, 정부는 해당 산업의 큰 틀을 짜고 공정한 룰을 집행하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역할만 담당하는 것이 정답이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정도로 가는 것이 결국은 빨리 가는 법이다.
개별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대신에 구조조정으로 발생하는 고용 충격에 대비해 실업급여 등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망해가는 기업 대신 또한 무섭게 커 올라오는 작지만 새롭고 강한 기업들이 빨리 성장할 수 있게끔 잘 관리해주는 것이 정부의 본분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