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말 워싱과 ‘곡성’ [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6-06-0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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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전라도 사투리 대사로 연기하는 '곡성'(사진=영화 '곡성'스틸컷)
한국계 미국인 힙합가수 덤파운디드(30)의 신곡 ‘세이프’의 뮤직비디오가 화제다. 할리우드 영화사가 캐릭터에 상관없이 무조건 백인을 캐스팅하는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에 대한 해학적 비판이 단연 시선을 잡는다. 영화 ‘마션’ 에선 원작에 한국계 과학자인 민디 박 역할을 매킨지 데이비스가 맡아 논란을 빚었고 올해 말 개봉 예정인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티베트 신비주의자로 틸다 스윈턴이 출연한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을 각색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도 일본인 구사나기 모토코 소령 역에 스칼릿 조핸슨이 캐스팅됐다. 이런 상황 때문에 ‘화이트 워싱’에 대한 비판과 할리우드의 인종차별 논란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세이프’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요즘 흥행 고공행진을 하는 영화 ‘곡성’으로 눈길이 향한다. “내 눈깔로 봐야 쓰것다” “자네가 고것을 건드러부렀어” “그놈은 미끼를 던져 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확 물어 분 것이여”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가 영화 전편을 수놓는다. 궁금증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스토리 전개, 미스터리와 오컬트 요소의 적절한 조화,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 인간과 악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 등 여러 이유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곡성’의 주연이 전라도 사투리 대사를 한다. 참 오랜만이다. 사투리 쓰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영화뿐인가.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말을 쓰지 않는 사람은 주연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이라도 있는 듯 드라마와 영화 속 주연은 한결같이 서울말을 사용한다. 캐릭터에 상관없이 백인 배우를 기용하는 할리우드처럼 우리 드라마와 영화는 서울말 쓰는 사람이 주인공을 독식한다. ‘서울말 워싱’이라는 용어가 등장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언어생활과 언어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다.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는 그동안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규정한 표준어를 유일한 주류언어로 간주하며 다수에게 표준어 사용을 강권하며 사투리의 설 자리를 잃게 했다.

그뿐만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코미디에서 사투리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차별적 묘사, 편견에 가득 찬 전형화를 지배적인 이미지와 관습적 서사, 스테레오타입의 캐릭터를 통해 심화시켰다. 의사, 판검사를 비롯한 전문직 주인공이나 재벌 등 상류층은 서울말을 그리고 깡패, 교양 없고 무식한 캐릭터는 사투리를 구사하는 행태를 반복해 ‘주연=서울말’, ‘조연=사투리’라는 등식을 고착화했다. 동시에 사투리는 무식한 캐릭터나 촌스러운 지역, 부정적 직업 묘사의 등가물로 인식하게 했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촌스럽고 무식하며 비주류로 간주하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사투리는 지역 생활과 문화, 역사, 그리고 지역민의 정서와 특성이 오롯이 살아 있는 언어이자 표준어가 갖지 못한 느낌과 의미, 향취를 드러낼 수 있는 언어의 보고(寶庫)다. 또한, ‘곡성’처럼 영화, 드라마, 코미디 등에서 리얼리티를 배가시키고 캐릭터와 소재의 스펙트럼을 확대하는 중요한 언어 장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사투리의 중요성을 인식해 사투리인 흑인 영어 등을 제2의 언어로 보존 활용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투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담은 다큐멘터리 ‘사투리의 눈물’을 연출한 최진철 PD는 ‘언어 인권’을 주장하며 사투리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이제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서울말 워싱’을 없애고 사투리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기위해 ‘언어 인권’을 주장해야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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