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한국을 통치한 미 군정청 사령관
1893년 이날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가 존 리드 하지(1893.6.12~1963.11.12)가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소위로 임관해 직업군인이 된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과달카날전투와 부건빌 작전 등에서 용맹을 떨쳤다. 그래서 ‘태평양의 패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44년 필리핀 전쟁 중 소장, 1945년 8월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미 제10군 산하 24군단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여기까지 보면 유능한 군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후 하지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명령에 따라 1945년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주한미군 사령관 겸 미 군정청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을 통치하는 한편 38선 이남의 일본군 무장을 해제하는 일을 맡았다. 이후 1950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 브래그에서 5군단장을 맡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육군 3군 사령부 총참모장에 올랐으며 1952년 대장으로 승진한 뒤 그 다음 해 퇴역해 1963년 별세했다.
한반도에 직접 관여한 것은 3년밖에 안 됐지만 일본에서 해방된 신생 대한민국의 혼란기에 통치자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반탁운동을 벌이자 중국으로 추방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승만이 한국인을 업신여기는 하지에게 노발대발해 맥아더 장군에게 강력히 항의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는 좌익 폭동을 막고 정부 기능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총독부 인사들을 인정해 친일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야전군인 하지가 온갖 정치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반도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한국사에서 미군정 시대 3년은 또 하나의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배준호 기자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