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표 대결' 신동주, 신동빈 해임 안건 요구…롯데 "홀딩스 주주 동요 없어 표 대결 무의미"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이 사정당국의 강도 높은 비자금 수사가 시작돼 창사 70여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이 혼란의 와중에도 신동주·동빈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신 회장의 이사직 해임안을 상정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똘똘 뭉쳐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피 튀기는 경영권 분쟁을 하겠다는 의지다.
12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이달 말 일본 도쿄 롯데홀딩스 본사에서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주총에 앞서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을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해달라고 롯데홀딩스에 공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안건 상장 여부는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결정되는데, 거부할 명분과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만큼 정식 안건으로 채택돼 주총 당일 표 대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두 차례의 주총 표 대결에서는 모두 신 회장이 압승한 만큼 롯데그룹은 이번 표 대결 역시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신 전 부회장의 반격이 단순히 이번 한번의 표 대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신 회장과 호텔롯데·롯데면세점·롯데마트 등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비자금, 면세점 입점 로비, 가습기 살균제 인명피해 등으로 동시에 수사를 받는 등 큰 위기에 직면한 만큼, 신 전 부회장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0일 롯데 본사와 계열사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발 빠르게 성명을 내고 "창업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라는 중대성에 비춰 정기 주총에 앞서 롯데홀딩스 및 종업원 지주회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긴급협의의 장을 설치하길 요구한다"며 주총 표 대결을 겨냥한 '판 흔들기'를 시작했다.
지난 8일 일본에서 서울로 건너온 신 전 부회장은 9일 열이 나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서울대병원(종로구 연건동) 입원에 동행했고, 12일 현재까지 병원을 오가며 신 총괄회장 곁을 지키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아버지의 후계자'라는 이미지 부각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 측은 한·일 롯데를 모두 장악한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자체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거듭된 수사 소식에 그룹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사실이지만, 종업원 지주회 등 롯데홀딩스 주요 주주들이 동요하는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사정당국의 칼날이 롯데 오너일가를 향해있음에도 롯데 형제의 왕좌 다툼에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더욱이 롯데가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일본으로 간다는 '국부 유출' 논란이 이번 수사의 배경 중 하나로 알려지면서 롯데는 국적 논란에 이어 국부 유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롯데의 지주사격인 호텔롯데는 해외계열사 지분이 99%에 달한다. 12개 L투자회사들의 지분율이 72.65%이며 일본 롯데홀딩스(19.07%), 광윤사(5.45%) 등이 주요 주주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롯데가 벌어들인 이익이 배당금 형태로 일본으로 빠져나가며, 호텔롯데의 상장 시 구주 매각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일본으로 흘러나간다는 점이 '국부 유출'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배당금을 통한 유출은 극히 일부이며 롯데가 벌어들이는 대부분은 국내에 재투자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