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김해준 교보증권 대표이사·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강대석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등
‘단명’의 아이콘(?)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재임기간이 짧은 것으로 유명한 것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자리다. 그런데 최근 증권가에 5년 이상 자리를 지키는 장수 CEO가 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자리를 지키는 CEO도 있다.
탄탄한 실적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장수 시대’를 연 CEO들에 대해 알아봤다.
◇증권업계 ‘레전드’가 되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 증권업계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지난 2007년 사장으로 선임된 지 10년. 업계 최초로 9연임에 성공하며 최장수 CEO로 역사를 새로 쓰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는 그의 별명인 ‘Legendary James(전설적인 제임스)’처럼 증권업계의 새로운 전설이 돼가고 있다. ‘전설적인 제임스’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 불모지인 영국 런던 금융가에서 유 사장이 1990년대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시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에 대한 신뢰로 그의 영문 이름인 제임스의 애칭을 따 붙인 별명이다.
한일은행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유 사장의 증권업계 경력은 1988년 대우증권 국제부에서 시작됐다. 이후 1999년 메리츠증권, 2002년 동원증권, 2005년 한국투지증권에서 리서치, 국제영업, 파생상품, 자산운용, 기획재경, IB, 국내기관영업 등 요직을 고루 거친 유 사장은 자본시장 개방 1세대로 꼽힌다.
특히 런던에서 7년간 글로벌 국제금융 사업을 담당하며 세계적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유 사장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형 투자은행 모델’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유 사장 취임 후 이 같은 경험을 살려 한국투자증권은 IPO, 회사채, ELW, 부동산금융, ELS공모, 공모증자 등 주요 IB에서 증권업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국내 금융사의 기념비적인 딜인 삼성생명 상장도 대표 주관했다.
유 사장은 이제 한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 최고 투자은행 진입’이란 중장기 목표를 이루고자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에 힘쓰고 있다.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과 연계된 직접투자, 금융자문 서비스, 인수중개업무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
유 사장은 “해외시장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이를 다른 신흥시장에 이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진출 성공의 경험, 성공의 DNA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1호 증권사 최장수 CEO… 김해준 교보증권 대표이사 = 대한민국 1호 증권사의 ‘1호’ 최장수 CEO 김해준 대표이사는 올해 4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오는 2018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은 김 대표는 ‘업계 톱(TOP) 5위’라는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인 97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지난 8년간의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지금, 김 대표의 목표 달성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김 대표는 목표 달성을 위해 5대 핵심 전략 과제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익구조의 다변화 △안정화와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 △고객니즈 선도 금융 솔루션 제공 △효율적인 경영 시스템 및 조직역량 강화 △시너지 강화 등이다.
이를 위해 기업금융(IB)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화금융(SF) 부문으로 구조화된 상품 딜을 확대하고 기존의 자산관리(WM) 영업을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한 해외주식 서비스의 활성화를 제고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신이 강점을 가진 IB 분야에서 승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김 대표는 증권가의 대표적인 IB전문가로 꼽힌다.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김 대표는 1988~1999년 IB 부문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자산관리영업본부장과 법인영업직을 두루 거친 김 대표는 교보증권과 첫 인연도 IB본부를 맡으며 맺었다.
IB 전문가답게 김 대표는 위탁매매 중심이었던 교보증권의 수익구조를 IB 등으로 다변화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 김 대표 취임 이후 교보증권은 신탁과 IB영업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작년에 신설한 IB대체투자팀은 에미레이트 항공 등 항공기 관련 자금조달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 1년 만에 1억 달러 이상 딜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도 실력도 ‘킹’… 최희문 메리츠종금 대표이사 = 숫자로 평가받는 것이 익숙한 증권업계에서 단연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CEO가 있다.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다. 지난해 연봉 28억원으로 2년 연속 증권업계 ‘연봉킹’에 등극한 것.
높은 연봉뿐만이 아니다. 최 대표는 벌써 6년째 메리츠종금증권을 이끌며 장수 CEO 반열에도 올랐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20위권의 소형 증권사였던 메리츠종금증권을 대형증권사도 부러워할 만한 증권사로 키운 결과다.
최근 메리츠종금증권은 증권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3조2410억원, 영업이익 4051억원, 당기순이익 2873억원을 기록하며 1973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 수익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지난해 21.3%로 3년 연속 증권업계 1위를 기록했다.
실적뿐만 아니라 지난 2014년 아이엠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덩치도 키웠다. 지난해 말 기준 메리츠종금증권의 자본총계(연결)는 1조7196억원으로 2014년 말 1조771억원에 비해 6414억원(59.5%) 급증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그동안 메리츠종금증권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리테일부문’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메리츠종금증권은 리테일 부문에서 3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34억원) 대비 아홉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리테일 영업직원을 대폭 늘리고 성과 기반 보상시스템을 도입한 최 대표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최 대표는 이제 대형 IB로의 발판 마련에 힘쓸 예정이다. 종금 라이선스가 만료되는 2020년 이전에 자기자본을 3조원 이상으로 늘려 대형 투자은행(IB) 사업자 자격을 확보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신한금투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 =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대표이사가 3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신한금융투자가 신한금융지주에 편입된 이후 3번째 연임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한은행 부행장 출신이 아닌 증권업계 출신 CEO도 강 대표가 처음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강 대표는 1980년 외환은행 입사로 금융권에 들어섰다. 이후 1988년 신한증권에 입사하며 증권업계에 발을 들인 후 굿모닝신한증권 리테일본부장(부사장)까지 역임했다. 이후 KT뮤직 대표, 신성투자자문 대표로 증권업을 잠시 떠났다가 7년여 만인 지난 2012년 2월 CEO로 친정에 복귀했다.
신한금융투자의 ‘최초’ 타이틀을 연이어 거머쥔 강 대표의 비결은 역시 ‘실적’이다. 신한금융투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607억원으로 전년 대비 96.2% 증가했으며 순이익도 82.2% 증가한 215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뿐만이 아니다. 강 대표 취임 이후 매년 신한금융투자는 성장세를 보여왔다. 2012년 2월 취임 이후 다음해인 2013년 영업이익은 1017억원으로 전년 679억원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4년 1329억원, 2015년 2607억원으로 증가했다. 순이익 역시 2012년 639억원, 2013년 754억원, 2014년 1182억원, 2015년 2155억원으로 매년 늘었다.
◇뚝심의 ‘대신맨’, 명동시대도 이끈다…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 =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이사는 무려 30년 이상 대신증권에 몸담은 정통 ‘대신맨’이다. 1985년 공채로 대신증권에 입사한 나 대표는 강서지역본부장, 강남지역본부장, 리테일사업본부장, 홀세일사업본부장, 기획본부장, 인재역량센터장, 기업금융사업단장 등을 거쳤다.
요직을 두루 경험한 나 대표지만 그의 역량이 가장 빛을 발한 곳은 역시 영업 현장이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때에도 나 대표가 이끄는 강남지점은 전국 1등 점포로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나 대표는 대표 자리에 오른 뒤 이때의 경험을 살려 자산관리(WM) 부문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각 지점의 우수한 프라이빗뱅커(PB)를 선발해 ‘금융주치의’로 육성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 또 점포 효율화 작업을 통해 거점 점포도 만들었으며 금융주치의 제도에 걸맞은 신상품도 적극 출시했다.
이 같은 노력은 최근 결실을 보고 있다. 대신증권 전체 수익에서 브로커리지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0년 66%에서 지난해 37%까지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WM 부문은 대폭 성장했다.
이에 수익성도 향상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연결기준 136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8년 만에 최대 순이익을 낸 것.
나 대표 취임 후 인수합병(M&A)을 통해 자회사로 편입한 대신저축은행, 대신에프앤아이, 대신자산운용 등도 최근 들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며 ‘나재철호’ 대신증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