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1953.6.15~)은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중국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공산당 원로인 시중쉰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2012년 후진타오로부터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물려받고, 이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에 올라 명실상부한 중국의 1인자가 된 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전임자인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중심이 된 집단지도체제였기 때문에 시 주석과 같은 힘을 갖지는 못했다.
시 주석은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운동을 펼치면서 자신과 권력투쟁을 벌였던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과, 비리로 얼룩졌던 링지화 전 중국 통일전선공작부장 등 라이벌들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 그동안 총리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경제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해 리커창 현 총리가 별다른 힘을 못 쓰는 상황이다.
이런 시진핑이지만 권좌에 오르기까지 누구보다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문화혁명 시절 산시성 량자허촌으로 하방돼 무려 7년 동안 토굴에서 생활했다. 공산당에 10번이나 입당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아버지의 복권과 함께 베이징으로 돌아와 칭화(淸華)대를 졸업하고 나서 겅뱌오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의 비서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권좌에 오르기 전인 2012년에는 저우융캉,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일파와 톈안먼 사태 이후 가장 치열했던 권력투쟁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 당시 저우융캉이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시진핑은 1인자에 오르기 전에는 중국 국민가수 펑리위안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지기도 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외교전략이던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라는 말이 쏙 들어맞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