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업 집중해부] 네이버, 이해진 ‘초석’ 다지고 김범수·이준호·신중호 ‘기둥’… 이보다 더?

입력 2016-06-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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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포털 ‘야후·다음’ 2파전 속 김범수 의장 ‘한게임’으로 수입원 확보하고 이준호 회장과 통합검색 개발·2006년 신중호 CGO ‘첫눈’ 인수로 2011년 日라인 대박

매출 3조2500억 원, 영업이익 7600억 원(2015년 실적). 국내 1위 포털 ‘네이버’는 가장 성공한 벤처 모델이다. 최근에는 네이버의 100% 자회사인 ‘라인(LINE)’의 일본과 미국 증시 상장을 이끌어내며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네이버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중심은 창업을 주도했던 이해진 의장이다. 하지만, 주연이 있다면 화려한 조연도 있는 법. 네이버가 위기와 기회를 맞을 때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신중호 라인 최고글로벌책임자(CGO)는 이 의장과 인연을 맺고 네이버의 급성장을 이끌어 냈다.

네이버는 20여 년 전 삼성SDS의 사내벤처로 시작했다. 당시 사내벤처를 이끈 이가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다. 이 의장은 1992년 삼성SDS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5년차 시절인 1997년, 신입사원 3명과 함께 사내벤처 1호인 ‘웹글라이더팀’을 만들어 3년간의 개발 끝에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이후 1999년 ‘네이버컴(현 네이버)’을 설립하며 인터넷 포털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야후와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이 인터넷 포털 시장을 주도할 때다. 당연히 네이버가 설자리는 넓지 않았다. 사업 시작 1년 뒤인 2000년에는 IT벤처 버블이 꺼지면서 사업환경도 녹록지 않았다. 이 의장이 야심차게 포털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손실은 커지고 수익모델은 절실했던 시기다.

이때 이 의장이 만난 사람이 김범수 한게임커뮤니케이션 대표다. 이들의 만남은 네이버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주춧돌이 됐다. 둘은 대학교 동창이자 삼성SDS 동기다. 이해진의 네이버컴과 김범수의 한게임이 합쳐져 회사는 NHN으로 의기투합했다.

초기 NHN을 먹여 살린 것은 한게임이었다. 2001년 한게임에서 아이템을 파는 것이 속칭 ‘대박’나면서 NHN의 성장 엔진에 불을 지폈다. 이후에도 한게임은 신규 게임 출시와 엔터테인먼트 채널 활성화를 앞세워 NHN의 실적 고공행진을 견인했다. 고포류(고스톱·포커류)를 통한 일 매출이 10억원을 넘기며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은 효과였다.

하지만 한게임의 내용물이 대부분 고포류 중심의 사행성 게임으로 이뤄졌다는 세간의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빠른 성장을 댓가로 한 어두운 그늘이었다. 국정감사에서도 한게임의 고포류 게임은 계속 논란을 낳았다. NHN을 보는 우려의 시각도 커졌다. 이 의장은 NHN 초기부터 한게임 사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다시 포털사업인 네이버에 투자하며 게임사업의 대를 잇게 했다.

이준호 현 NHN엔터테인먼트 회장도 지금의 네이버를 있게 한 인물이다. 당시 숭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이 회장은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검색 기술 능력을 보유한 전문가였다. 이 의장과는 같은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동문이며, 이준호 회장이 이해진 의방의 3년 선배다. 엠파스와 같은 자연어 검색기능을 갖고 싶었던 이 의장은 10억 원을 투자해 월 4000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 회장에게 검색 솔루션의 공동 개발을 권했고, 이 회장은 교단을 떠나 서치솔루션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후 NHN은 서치솔루션을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해 이준호 회장은 자연스럽게 NHN의 대주주가 됐다. 이 회장이 개발한 통합검색 서비스 기술은 결국 NHN을 2005년 포털업계 1위로 등극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게임과 포털에서 국내 최고의 실력자를 확보한 이 의장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가 닥쳐왔다. 바로 글로벌 사업이다. 이 의장은 여러 차례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의 쓴맛을 봤다. 2000년 한게임재팬과 네이버재팬을 설립했고, 2004년에는 중국 게임포털 아워게임을 1000여억 원에 인수했다. 2005년에는 김범수 당시 글로벌 대표가 직접 총괄해 NHN USA를 설립했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이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던 시점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신중호 CGO다. 이 의장은 2006년 6월 신 CGO가 설립한 ‘첫눈’을 350억 원에 인수하면서 일본 검색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다시 키웠다. 신 CGO는 이 의장의 특명을 받고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 검색 서비스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네이버톡’을 발전시킨 라인을 개발해 일본시장에서 결실을 맺었다.

라인은 현재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2억1840만 명(3월 기준)으로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위챗 등에 이어 메신저 순위 4위를 달리고 있다. 다음 달 중순에는 일본과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하며 네이버 신화의 선봉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서로를 떠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NHN 공동대표 및 단독 대표를 거쳤던 김범수 의장은 2007년 회사를 그만둔 뒤,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그는 2위 포털 다음커뮤니케이션까지 인수해 현재 통합 카카오의 의장을 맡고 있다. 또 이준호 회장의 경우 2013년 NHN이 포털사업체 ‘네이버’와 게임사업체 ‘NHN엔터테인먼트’로 인적분할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 의장과 완전히 결별하는 수순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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