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도 없는 청년들이 면접 본다고 수백만 원을 쓰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취준생에게는 면접 자체가 큰 부담이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의 말입니다. 직장 구하려고 빚까지 지는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을 위해 ‘청년고용촉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하네요. 한번 볼 때마다 수십만 원씩 드는 면접비를 기업이 일부 부담토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법으로 말이죠. 개정안이 통과되면 짠내나는(구두쇠 느낌이 나는) 면접비 때문에 기분 상할 일은 없겠네요.
입사보다 퇴직이 더 가까운 고참 미생이라면 이 소식을 듣고 ‘면접 보는데 돈이 왜 필요해?’라고 생각할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난해 한 온라인 취업포털에서 구직자 8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응답자들이 말한 평균 면접비는 6만 원이었습니다. 10명 중 7명은 이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이 중 30%는 돈 때문에 면접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유가 된다면 좋은 정장으로 장만하세요. 검은색 구두가 기본이고요. 아이라인은 리퀴드(액체) 타입으로 하시고, 입술은 핑크 립글로스로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면접비 6만원’은 평균입니다. 구직자들이 실제로 쓰는 돈은 더 많다는 얘기죠. 한 금융권 취업카페에 오른 글인데요. 복장, 헤어, 액세서리 등 면접날 따져야 할 게 스물일곱 가지나 됩니다. 머리카락 질끈 묶고 민낯으로 대학 생활을 보낸 구직자라면 이 글을 보고 암담할 겁니다. “백화점 가서 정장 사고, 메이크업 숍 예약하고, 차 편도 끊어놔야겠다. 근데 면접이 오전 10신데 언제 메이크업 받고 가지? 전날 근처 가서 자야 하나?”란 생각이 들겠죠.
취준생이 쓰는 돈, 얼마나 될까요? 지방에 사는 구직자를 가정해 따져보겠습니다.
1, 의복비 : 15만 원+α
2, 교통비 : 서울~부산 KTX 5만9800원 × 왕복
3, 숙박비 : 4만 원+α
4, 메이크업비 : 8만 원+α
5, 식비 :3만 원+α
뭘 입고, 어디서 자며, 어느 숍을 고르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충만 따져도 40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만약 요즘 유행(?)한다는 스피치학원까지 다니면? 서울 강남에 있는 유명학원 수강안내를 보면요. ‘면접스피치’ 2개월 코스가 68만 원이나 합니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만드는 데는 58만 원이 들고요.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이긴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네요.
이에 구직자들은 면접을 보려고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빚을 집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업들은 별 신경 안 쓰죠. 얼마 전 한 온라인 취업포털에서 신입 채용 기업 1662개사를 대상으로 ‘면접비 지급 여부’를 조사했더니, 10곳 중 3곳(28%)만 면접비를 줬다고 합니다. 평균 면접비는 2만6000원으로 조사됐는데요. 지난해와 비교하면 4000원 더 인색해졌습니다.
어느 기업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액수도 달랐는데요. 대기업은 3만1000원을 지급했지만, 중견기업(2만8000원)과 중소기업(2만5000원)은 이보다 적었습니다.
기업별로 살펴볼까요? 구직자 입사선호도 1위인 현대차는 지난해 3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봉투에 만 원짜리 3장을 담아줬죠. 롯데마트는 6만원이 충전돼 있는 기프트 카드를 줬고요. 대한항공은 2~4만원 상당의 여권커버와 비행기 모형을 제공했습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받으면 다행입니다. 면접을 보기 위해 되레 돈을 낸 사람들도 있거든요. 3년 전 경기도에 있는 한 공공기관은 ‘허수 지원자를 가려내겠다’는 명목 아래 구직자들에게 최대 1만 원의 응시료를 받았고요. 법무부 산하의 한 재단법인은 구직자들에게 ‘원서 접수비 7000원을 내라’고 통보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몇 해 전 한 취업카페에 오른 사진입니다. 대기업 계열사 이름이 새긴 봉투 안에 5만 원권 한 장과 편지가 들어있네요. “면접 보느라 많이 긴장되셨죠? 많지 않은 면접비지만, 친구들과 소주 한 잔 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라고 적혀있네요. 구직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법으로 강제하더라도, 구직자들이 이런 편지를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직장 구한다고 빚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