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씩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더위를 가시게 할 스릴러 소설 신작 5선을 꼽아봤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비롯해 반전 가득한 살인 사건, 괴이 현상이 끊이지 않는 흉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하는 영국, 북유럽, 일본, 한국 소설이 시원한 여름을 선사할 전망이다.
M.J 알리지의 ‘인형의 집’은 헨릭 입센의 고전 명작과 같은 이름을 가진 스릴러 소설로, ‘이니미니’로 시작되는 여형사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전작과 주인공, 등장인물을 공유하지만, 독립적인 이야기로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사건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고전 명작에서 제목을 차용하는 등 유머와 비유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소설 속 범인들은 짐승만도 못한 사이코패스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가정 폭력과 학대에 시달린 아픔을 지니고 있다. 이런 설정으로 단순히 흥미 위주의 장르 소설을 넘어서 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론과 선악의 경계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하는 흡입력도 갖췄다. 이번 작품은 어느 날 자신의 방이 아닌 서늘하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깨어난 ‘루비’의 이야기를 다룬다.
범죄수사와 정신분석이 얽혀 펼쳐지는 숨가쁜 북유럽 스릴러 ‘크로우 걸’은 근친상간과 아동 인신매매 등 현대 사회의 가장 어둡고 변태적인 부분을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이다. 총 3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도덕적 한계를 시험할 소재, 긴박감이 넘치는 범죄 수사, 스릴러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페미니즘적 시선이 섞인 등장인물과 함께 정신 분석학적 내용으로 극찬을 받았다. 저자 이름인 에리크 악슬 순드는 스웨덴 작가 예르케르 에릭손과 호칸 악슬란데르 순드퀴스트가 함께 쓰는 필명이다. 두 작가는 깊이 있는 정신 분석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아이들이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 때 흔히 찾는 방어 기제로 인해 태어난 다중 인격자들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누가 다중 인격자이며 누가 범인일지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호러와 미스터리,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융합시켜 극단적인 공포를 이끌어내는 미쓰다 신조의 최신작 ‘화가’ 역시 독자의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기시감과 살인 사건을 소재로 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낯선 마을로 이사한 소년이 생전 처음보는 지역에서 기묘한 기시감을 느낀 뒤 원인을 찾아 나서면서 괴이한 현상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미쓰다 신조의 ‘흉가’, ‘화가’ 등 집 시리즈는 나이 어린 주인공이 낯선 곳으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편안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사건의 무대가 되고 어린 주인공들이 마음대로 집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는 점 등이 공포감을 끌어올린다. 출판사는 “특히 ‘화가’에서 주인공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공포를 넘어서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20년간 일본 호러소설 분야에서 명작으로 꼽혀온 ‘장난감 수리공’도 선을 보인다. ‘천국과 지옥’, ‘앨리스 죽이기’ 등으로 스릴러 소설 팬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고바야시 야스미의 1995년 데뷔작이다. 당시 저자는 ‘장난감 수리공’으로 제2회 일본호러소설 단편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라섰다. 실수로 남동생을 죽게 하고 두려움에 떨던 소녀는 무엇이든 고쳐주는 수수께끼의 장난감 수리공을 찾아간다. 저자는 수리공의 모습과 수리 과정을 섬뜩하게 묘사한 뒤, 충격적인 결말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귀신, 살인마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독자에게 직감적인 공포를 안겨준다. 이 책에는 ‘장난감 수리공’과 함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가 실렸다.
개봉 첫날 128만 명을 동원하며 영화 ‘명량’(125만7380명)이 2014년 세운 하루 최다 관객 기록을 갈아치운 영화 ‘부산행’도 소설로 출간됐다. 스크린을 통해 쏟아지는 시각적인 공포와 달리 치밀한 장면 묘사와 섬세한 내면 묘사로 독자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글과 함께 실린 영화 속 장면이 긴박함을 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