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팡팡] #고종#보온병#정략결혼… 키워드로 본 덕혜옹주의 삶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했습니다.영화 포스터의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카피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한일합방·광복…역사의 격랑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삶을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고종1910년 한일합방 후 2년 뒤… 1912년 고종 황제와 후궁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혜’.고종은 3명의 딸을 잃고 얻은 덕혜를 특별히 아꼈습니다.현재 창덕궁의 낙선재에 유치원을 만들어주기도 했죠.하지만 1919년, 고종은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보온병백성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1925년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갑니다.
당시 덕혜옹주 나이 14세.일본으로 간 덕혜옹주는 일본인 학교를 다녔는데요.언제 독살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보온병을 들고 다니며 자신이 가져간 물만 마셨습니다.
#정략결혼1931년 일본은 덕혜옹주를 완전히 일본화시키기 위해 대마도(쓰시마섬) 도주(島主)의 후예 소 다케유키라는 일본인과 강제로 정략결혼을 시켰습니다.1932년 딸 정혜를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듯 했지만…조울증, 우울증과 조현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신병원조발성치매증을 앓고 실어증까지 시달리던 덕혜옹주. 남편은 1945년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킵니다.1955년 이혼을 당하고 1956년 딸 정혜는 산에서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됩니다.
#입국거부1945년 광복.흐릿한 정신 속에서도 조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지만…정치권은 덕혜옹주의 귀국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광복 17년 후인 1962년에야 대한민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덕혜옹주.
#낙선재귀국 후 7년 동안 병원에서 생활하다 1968년 창덕궁의 낙선재로 돌아온 덕혜옹주.지병을 앓던 그는 198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낙선재에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덕혜옹주가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쓴 편지(1983년)조국과 일본이 모두 버렸던 ‘덕혜옹주’그러나 그녀는 마지막까지 조선의 왕녀임을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