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서 지도관련 부서 근무한 존 행키
노하우 쌓아 사내 벤처 ‘나이언틱’ 설립
조직개편으로 퇴사… 닌텐도와 제휴
독립 1년만에 ‘포켓몬 GO’로 잭팟
주식 30% 보유한 구글도 ‘낙수효과’
만개한 벚꽃으로 거리 곳곳이 핑크빛 낭만으로 물들었던 2015년 3월 28일의 오후.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에 5600명의 인파가 몰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녹초가 된 모습이었지만 만면에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라도 열린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들은 편을 갈라 교토를 무대로 하루 종일 땅따먹기 게임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팀을 이뤄 상대편 ‘포털’을 점령하면서 영토를 넓혀가는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Ingress(잉그레스)’ 마니아들이다. 1년 전 같은 행사를 개최했을 때만 해도 잉그레스의 인기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참가자는 고작 30여명에 불과했었다. 그러던 것이 입소문을 타고 1년 새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이번에는 세계 곳곳에서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거리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전부 스마트폰 화면에 등장한 작은 괴물들을 붙잡겠다고 혈안이다. 이들 역시 모바일 AR 게임 ‘포켓몬GO’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의사도 못 고치던 은둔형 외톨이가 집 밖으로 나왔다” “살이 쭉쭉 빠진다” “자폐아가 모르는 사람과 하이 파이브를 했다”는 등 포켓몬GO 출시 이후 불가사의한 일들이 잇달아 보고되고 있다.
이 같은 기적을 일으킨 게임들을 만든 주인공은 ‘나이언틱’이라는 미국 게임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구글의 사내 벤처였다. 대표인 존 행키는 잉그레스와 포켓몬GO의 연이은 성공으로 위치 기반 게임의 선구자란 타이트를 거머쥐게 됐다.
행키는 미국 텍사스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프로그램을 익혔다. 그는 신호가 1개 밖에 없는 인구 1000명의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해 1979년 출시된 가정용 PC ‘아타리400’으로 직접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텍사스 오스틴대학을 졸업한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했다. 이전부터 게임회사 설립을 꿈꾸던 그는 친구가 시작한 ‘아키타이프 인터랙티브(Archetype Interactive)’라는 게임회사에 합류, 이 회사가 개발한 유일한 게임인 ‘Meridian 59’ 개발에 참여했다.
행키가 잉그레스와 포켓몬GO로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행키는 친구 회사에서 나온 후 두 차례의 게임회사를 창업했다가 세 번째로 위치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그램 회사 ‘키홀’을 창업했다. 그는 키홀을 통해 ‘어스뷰어(Earth Viewer)’라는 지도 앱을 만들었고, 이 앱은 키홀이 2004년 구글 산하로 편입된 후 ‘구글 어스(Google Earth)’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행키는 구글 산하에서 구글 스트리트뷰, 구글맵스 등 지도 관련 서비스를 총괄하는 부서에서 일하다가 사내 벤처 나이언틱을 설립했다.
하지만 구글 산하에서 나이언틱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작년 8월 구글이 조직 개편과 함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나이언틱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구글은 나이언틱에 안드로이드 부문에 흡수될 것인지 아니면 폐쇄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행키는 독립을 결정했다. 구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게임의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독립한 행키는 바로 외부 투자자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팔을 걷었다. 나이언틱은 일본 닌텐도와 손을 잡았다. 닌텐도와 그 자회사인 포켓몬, 그리고 자신의 모태였던 구글로부터 총 30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는 ‘모바일’ ‘매핑’ ‘게임’을 키워드로 한 AR 게임 포켓몬GO로 결실을 맺게 됐다.
애널리스트들은 포켓몬GO가 연간 5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한 벼랑 끝에 내몰렸던 닌텐도에 부활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물론 나이언틱의 주식을 30% 가량 보유한 구글도 포켓몬GO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행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켓몬GO의 성공에 대해 “집 밖으로 나와 몸을 움직여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개념은 잉그레스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면서도 “그러나 포켓몬의 파워와 캐릭터의 매력이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