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선물을 받고 값비싼 선물을 주어야만 고마움이 표시되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 크고 우뚝하게 보였던 분은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도 여전히 크고 우뚝하게 보인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이 그렇고, 또 할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삶이 늘 커다란 산처럼 여겨진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 할아버지를 어려워하면서 존경하고 또 고마워했다.
산과 들의 모든 나무의 나뭇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늦가을, 노새가 끄는 작은 수레가 우리 집으로 온다. 빈 수레를 끌고 온 사람은 나이 쉰쯤 되어 보이는, 한지를 만드는 종이 공장의 종이 아저씨다. 종이 아저씨는 우리 집 닥나무 숲으로 가 닥을 베어 수레에 싣는다.
한 달 반쯤 지나 이제 그 일을 잊을 만하면 어느 날 다시 우리 집에 온다. 이때엔 종이 아저씨가 두루마리로 둘둘 만 창호지 뭉치를 어깨에 메고 온다. 우리 집의 닥나무를 베어 간 다음 그걸 원료로 종이를 만들어 그중 일부를 다시 우리 집에 가져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엔 닥나무 숲이 저절로 생긴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냥 생긴 숲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이 산 저 산에 퍼져 있는 닥나무를 한곳으로 파 옮겨 닥나무 숲을 만들었던 것이다. 집에서 종이를 직접 만들 수 없으니 그 원료가 되는 닥나무를 심어 그걸로 자급자족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종이 아저씨가 창호지 뭉치를 가져오면 할아버지가 이웃집들과 가까운 친척집 한 집 한 집을 떠올리며, 또 그 집에 문이 대략 몇 개인지 어림 계산을 하며 창호지 뭉치를 나누신다. 겨울이 되었는데 새로 문을 바르라는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이웃집에 종이를 나누고 또 가까운 대소가에 종이를 나누었다. 그 심부름을 우리가 신문배달원처럼 옆구리에 창호지를 끼고 다니며 했다.
그러면 며칠 후 종이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품이 왔다. 꼭 종이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품이라기보다 한동네에 살며 이런저런 보살핌을 받은 것에 대해 잘 다듬어 손질한 오죽 담뱃대를 보내오기도 하고, 지난 가을에 잡은 토끼의 털로 만든 토시를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잘 고은 수수엿을 보내오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집 같으면 표면에 살얼음이 살짝 낀 연시를 보내오기도 했다.
누구나 마음 안에 고마운 분들이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주 큰 도움을 받은 분이 있기도 하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도움을 받은 분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분들에게 오히려 큰 선물을 하면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나, 실례가 될 때가 많다.
내가 최근 김영란법 논란의 와중에 어린 날 할아버지와 이웃들이 주고받았던 선물을 다시 떠올리는 건 그분들이 서로 고마움의 표시로, 또 그런 정성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서도 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오래 기억할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도 우리가 받은 고마움만큼이나 아름답게 하자.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에게 김영란법은 아름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