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덕여왕은 하늘의 북극성이 아닌 북동 방면의 주변 별자리인 견우(牽牛)성에 천문대를 세워 모든 주요한 국가시설과 왕릉을 첨성대의 동심원 자리에 배치했을까? 왜 다케미야는 집을 확보하기 쉬운 귀와 변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바둑을 두지 않고 바둑판의 중앙인 천원(天元)을 중심으로 두는 바둑을 시작했을까? 바둑판의 천원은 북극성 자리일까? 견우성 자리일까?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우주 중앙이 아닌 귀퉁이에 세운 것은 그가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하는 북반구 별들뿐 아니라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남십자성을 중심으로 하는 남반구 별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우리가 중앙이라 알고 보는 곳은 중앙이 아니고, 우리가 주변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내가 보지 못하는 음(陰)의 세계와, 내가 보고 만지는 양(陽)의 세계의 균형점이라는 것을 정말 눈 밝은 그녀는 알았고 실천했을지 모른다.
흔히들 세상은 드러나지 않은 78%의 음의 세계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게 드러난 양의 세계 22%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정사각형 안에 원을 그리면 원 면적은 78%이고 나머지가 22%이다.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도, 우리 신체의 수분과 물질의 비율도 78 대 22로 이뤄져 있다.
이 법칙은 스톡(Stock)의 개념이 아닌 플로(Flow)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곧 보이지 않는 에너지인 음의 세계 78%가 보이는 22%의 질량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정, 한, 청춘, 설렘 등 숫자로 표현할 수 없고 외국어로 표현하면 한없이 그 의미와 가치가 가벼워지는 언어로 사는 한국인들! 이 아날로그적인,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인 한국인들이 전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을 스스로 ‘헬 코리아’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혹시 선덕여왕 같은 지혜도 없는, 아니 종이 위의 글자와 눈에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이 사회의 지식인들이 그들이 통제하기 쉽게 아무 법이나 만들어 한국인의 창의성을 말살해온 탓은 아닐까? 디지털 세상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디지털 세상의 인간 생체실험장 한국과 한국인을 실험실의 청개구리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1750년 산업혁명 이후로 제조업, 서비스업, 그리고 농업의 순으로 기계와 컴퓨터와 유전공학으로 진화한 22% 양의 학문은 인간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세상을 만들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아무리 못사는 나라도, 아무리 가난한 동네도 5%의 부자는 항상 있었다.
이제 제발 미국,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보자. 이제는 눈 밝은 기업인이 귀와 변에서 자신들의 실리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다케미야 우주류 바둑처럼 전 세계를 중앙 천원 자리에서 바라보며 세계인 중 5% 특급 인구인 3억5000만 명을 대상으로 ‘새로운 가상국가 한국’을 세워, 신(新)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산업을 만들 때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한국의 20·30대는 세계적 명품이고, 30·40대는 디지털 프로들이며, 50·60대는 용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개 밥그릇이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고려청자 같은 존재라는 것을 눈치 채는 기업인이 나올까? 과학이 개념을 잡지 못해서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새로운 산업은 한국인이 가장 먼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 전 세계에 그 많이 풀린 돈을 활용해 인간이 꼭 필요한 산업을 다시 일으킬 인적 자원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정말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