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김정호 ‘대한민국 기업의 탄생’

입력 2016-08-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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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장인부터 삼성·현대차까지

이 나라는 황무지 같은 환경에서 일어섰다. 아무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가들의 부상은 특별한 성취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서 기업 성장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김정호의 ‘대한민국 기업의 탄생’(북오션)은 백제시대의 장인으로부터 시작해 최근까지의 삼성, 현대자동차 그리고 엘지그룹까지의 기업 부침을 다룬 보기 드문 책이다.

백제와 일본은 밀접한 교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일본에는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건재한다. 반면에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의 장수 기업 목록에는 공고구미(金剛組·창업 연도 578년), 스미토모그룹(1615), 월계관(1637) 등이 포함되어 있다. 두 나라의 간격은 전쟁과 같은 요인들도 역할을 하였지만 그보다 더욱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재산권을 보장하는 체제가 유지돼 왔다. 저자는 말한다. “분명한 것은 장인과 상인들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술도, 재산도, 그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에서만 축적될 수 있다.” 우리가 지난 60여 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룬 이면에도 재산권 제도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장기 침체에 빠진 한국 사회가 활력을 모색할 때 배워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조선조는 상업을 천대하였다. 상인들 스스로도 그 시대를 지배하는 분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돈 버는 일에 대해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조선조를 대표하는 상인 하면 제일 먼저 임상옥, 김만덕이 떠오른다. 임상옥은 최인호의 소설 ‘상도’의 주인공으로,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조선실록에 짧게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고 얼마를 벌었는가가 아니다. 실록에는 그가 수재의연금을 많이 냈기 때문에 나라에서 곽산군수라는 벼슬을 주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승진시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조선조가 상업을 얼마나 낮게 여겼는지를 엿보게 하는 기록이다. 조선조의 상업관은 “장사와 같이 천한 일은 아랫것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고귀한 나랏일을 하는 것이 양반으로서 마땅한 삶이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척박한 상업 환경 속에서 한일합방으로 조선이란 나라가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인들이 조선 땅에 세운 기업은 많았지만 조선인의 손으로 세워진 기업들도 등장하게 된다. 그 숫자는 미미하지만 이들 가운데 손꼽을 수 있는 사람이 김성수, 김연수 일족의 회사, 박흥식과 민대식 및 민대규 일족의 회사이다. 친일이란 꼬리표를 붙이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일제하에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공부도 하고 사업도 했어야 하지 않는가!” 김성수·김연수 형제는 한민족 최초의 근대적 제조기업인 경성방직을 일으켰다. 그들은 조선방직, 동양방직 등 일본계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만주에도 대규모 방적공장(남만방적)을 짓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이 정도까지 온 건 기적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 이래로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나의 것은 나의 것이고 당신의 것은 당신의 것이다’라는 인식과 제도가 굳건하게 보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으로의 한국 사회가 더 많은 기업가를 배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기업가 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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